문득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나.벌써 2021년은 반이나 지나갔고 코로나19는 1년이 넘게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갔다. 기쁜 마음으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1년 동안 흔히 말하는 대학 생활은 할 수 없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2학년이 되어있었다. 친구들과 신나게 예약해둔 여행 일정들은 다 취소가 되었고 밖에서 만나는 것조차 눈치를 보게 되는 세상이 되었다. 어디 아프거나 맨 얼굴로 나가기 창피하다는 이유에 썼던 답답한 마스크는 어느새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옷을 쇼핑하는 대신에 답답하지 않고 부드러운 마스크를 쇼핑하게 되었
처음으로 만났던 곳은 바다였다.초여름의 분위기를 머금어 푸르게 빛나던 바다 아에서 우리는 만났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너는 파도의 끝자락같이 새하얀 옷을, 나는 바다의 깊은 곳처럼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자신과 정반대의 사람은 본인을 끌리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하든가. 그때 나는 너에게 끌렸다. 평소와 달리 너스레 떨며 먼저 말을 걸었고 어쩌다가 서로의 연락처도 알게 되었다. 헤어지기 직전 훗날 다시 한번 만나자며 약속을 잡았지만, 빈말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너와 그렇게 끝이 난 줄 알았다. 하지만 너는 진심이었나 보다. 한
아이의 시선 해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친구들도 한명씩 집으로 가요해가 집으로 돌아가면 어두워지고친구들과 헤어져 슬프지만아빠와 엄마를 볼 수 있어서 기뻐요하루는 너무 짧아요. 주말에 바다를 갔어요.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을 때는하늘이 파랗고 바다도 파래요아빠와 엄마의 얼굴이 잘 보여요해와 눈이 마주칠 때는해가 하늘에 하나, 바다에 하나 두 개가 돼요해가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화가 난 걸까요?온 세상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빨개요하늘도 빨갛고 바다도 빨개요아빠와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아요.하지만 괜찮아요.아빠 엄마 손을
‘어느 날, 마리아 사랑병원 앞 동상에 엑스레이 사진이 걸렸어요. 두 사람이 엑스레이실에 있는 모습이 찍힌 엑스레이 사진이요.’ “와.. 정말” ‘윤영씨예요. 마리아 사랑병원의 간호사이죠. 윤영씨도 꽤나 충격을 받은 것 같아 보이네요. 윤영씨 뒤로 뛰어오시는 분은 이 병원의 원장님이세요.’ “여러분, 여러분. 아침 찬 공기 쐬시면 건강에 안 좋아요. 얼른 들어들 가세요. 아, 윤영 씨 그렇게 멀뚱히 사진을 보고만 있으면 어떡해요. 빨리 저 사진 좀 치워봐요.”“네? 제가요?”“네, 윤영씨 가요.”“아니, 제가 어떻게, 저기 위에 있
#죽음의 계단 바로 밑 어느 골목윤영은 자전거에서 내린다. 그의 앞에는 성원이 있다. 어, 여윤영! 성원은 수화기를 내리며 윤영에게 손을 흔든다.길 좀 잘 알려주지.. 이윽고 너 때문에 매우 힘들게 이곳에 왔다는 눈빛을 쏘는 윤영. 이에 성원은 그 방향으로 올 줄 몰랐다며 둘러댔다. 그래서 집은 결국 계약된 거야?어..됐어. 그건 다시 구하면 되는 거고. 윤영은 성원을 물끄러미 쳐다본다.왜, 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아.뭐가?너 혹시..혹시?아, 아냐.그래.응? 너 나한테 더 안 물어봐? 무슨 일인지?그래, 안 물어봐.
언젠가는 하얀 멋진 은발을 가지고 싶다.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멋진 머리칼을두 손으로 쓸어내리는 그 기분을 느끼고 싶다 멋지게 늙는다는 것 그것의 징표로 은발을 가지게 된다면그 어떠한 훈장보다 자랑스러울 거다. 염색으로는 낼 수 없는 그 세월의 흔적들여러 가지 사연과 기억들이 만들어낸 자랑스러움 일 거다.내가 사랑했던 우리 할아버지처럼 나는 할아버지를 좋아했다.항상 들려주시던 이야기와 모아두신 골동품 같은 물건들도 좋아했다.할아버지의 하얀 운동화들도 부러워했고아끼시던 라디오로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내 사랑은 언제나 건조했다.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히는가 하면 금방 수분을 잃고 말라비틀어지기 일쑤였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고 이게 내 운명이라 여기며 나조차도 만족하지 못할 합리화를 해왔다. 자랑은 아니지만, 한 번도 내가 먼저 다가간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 모두 먼저 나에게 다가와 주었으며, 나의 호감 또는 마음을 얻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맞춰 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그냥. 그러한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거나 완강히 거절했다면 차라리 나았을걸. 보잘것없는 나에게
ⓒpixbay 믿음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른다. 믿음은 한번 생기면 놓기 힘들다. 믿음은 가치가 있을까? 믿음은 대단한 걸까? 나는 무엇을 믿고 있을까?흙장난을 하다가 흙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호기심에 계속 흙을 파다 피가 났다. 흙 속에 파묻혀있던 것은 빛나는 보석인 줄 알았다. 흙을 파헤쳐 손에 쥐어보니 유리조각이다. 유리조각을 고이 주머니에 넣어 간직했다. 사람들에게 보석을 주웠다고 자랑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흔한 유리조각을 보고 보석이라 우겨서 나를 이상하게 봤다. 이상한 아이라며 놀렸다. 그럼에
병원 일로 골머리를 앓던 윤영 씨 앞에 성원의 전 여자친구 지연 씨가 나타났어요. 아니, 윤영 씨가 그녀를 찾아갔다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를 대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무슨 말을 해도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일 테니까요. 지연 씨 입에서 그 어떤 말이 나와도 이 상황이 윤영 씨에겐 유쾌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지연 씨가 윤영 씨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윤영 씨도 성원이한테 맞은 적 있죠? 전 맞은 적 있거든요."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지연
영화에서 메기가 크게 펄쩍 뛰어오르면 지진이 나거나 싱크홀이 생긴다. 결말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자 친구를 때린 적 있냐는 윤영의 물음에 성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한다. 잠시 뒤 메기가 펄쩍 뛰어오르고, 동시에 성원이 서 있던 자리에 크게 싱크홀이 생긴다. 성원은 싱크홀에 빠지고 윤영은 싱크홀 안을 쳐다보며 영화가 끝난다. 하지만 한 가지 재미있는 상상을 해 봤다. 만약 이때, 메기가 뛰어오르지 않았다면?그래서 싱크홀이 생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상상인데 위의 물음처럼 싱크홀이 생기지 않
나의 세상에는 항상 할머니가 있었다. 대부분 부모님이나 친구를 말할 수도 있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 세상에는 할머니가 가장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유치원에 갈 때랑 초등학교 등하교 때는 항상 할머니와 함께였던 것처럼 나의 시선 속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장날이면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가서 특별한 것을 사지 않더라도 칼국수 한 그릇을 먹고 돌아온 기억이 있다. 하나밖에 없는 외손녀라며 애지중지, 건강한 것만 먹이겠다며 시장에서 가장 싱싱한 것들만 사서 골라오시던 우리 할머니. 시간이 흐르면 어쩔 수 없이 나이
기차에 올랐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풍경들이 제 모습을 가지지 못하고 뭉개져 지나간다.기차의 종착역을 알리는 기계음을 몇 번 거쳤을까. 거쳐 온 종착역을 많이 지남에 비례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도 지나갔다. 너무 빠른 건 아닐까, 조금은 연착되고 지연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착실하게 기차는 앞으로 나아갔고, 영원히 닿지 못할 것 같던 종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비우고, 오직 우리만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기차 안의 답답한 공기가 숨을 조여와도 우리는 버텼다. 견디다 보면 이 기차는
보통 노래를 들을 때 멜로디가 먼저 귀에 들어오는 편이야, 아니면 가사가 먼저 귀에 들어오는 편이야? 사실 난 가사는 안중에도 없어. 일단 멜로디가 좋아야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보는 편이라서 “멜로디 때문에 들었는데 가사까지 좋네?”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웃기지? 아아, 또 얘기가 다른 길로 샐 뻔했네. 내가 말하려던 건 이게 아니고. 한 7월쯤이었나? 늘 그랬듯이 볼륨 빵빵하게 키우고 노래를 듣는데 가사 한 소절이 귀에 팍 꽂히는 거야. 강렬하고 조금 시끄러운 노래긴 했는데, 그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가사 때문이었어. 내가
순방향과 역방향 그리고 입석 어쩌면 기차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방향에 앉아 흔히 말하는 화이트칼라가 되길 원한다. 순방향에서 창밖을 보면 내가 가는 목적지를 바라본다. 하지만 역방향은 내가 달려온 길은 보며 계속해서 달려간다. 흔히들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이라곤 하지만 다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모순을 가지고 살아간다. 역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더욱 미래에 대해 갈망한다. 재물 운, 연애 운, 결혼 운, 직장 운 등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불안으로부터 야기된다
예전부터 기차역은 만남과 헤어짐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했다.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그곳, 그래서 우리는 기차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 모두 다르다.그렇지만 어느 누구에게든 분명히 추억일 거다. 어떤 종류든 말이다. 그 추억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다.기차 맨 뒤 칸에 앉아 창밖을 본 적이 있는가? 예매하다 보니 자리가 없어서 기차 맨 뒤 칸에 타게 된 그날은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인상적이었다.영화처럼 같이 온 일행들은 모두 잠들고 나 혼자 화장실을 가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솨아악….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솨아아아아아… “으음... 뭐....야..."서걱서걱. 간지러운듯한 기분 좋은 이 소리에 누군가가 깬듯하다. 아주 단잠을 꾸었는지 졸린 눈을 부비적, 부비적댄다. 무거운 머리를 받힌 목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한참을 오뚝이처럼있다 겨우 제 중심을 잡는다. “어.. 어!!!”. 분명 꿈에서 깬 것이 맞는데. 뭐지. 이건 현실이지만 꿈만큼이나 달콤해 보여.“에잇!”. 현실이 꿈만큼이나 달콤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 잽싸게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나, 좀 작
기차. 참 낭만적인 단어 같다. 기차하면 여행, 휴식, 여유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니까. 그래, 참 낭만적인 단어. 오늘은 나도 그 낭만 속에 있고 싶다. 창밖 풍경들이 점점 빨리 지나갔다가, 다시 느려지고. 산이었다가, 논이었다가, 마을이었다가.. 끊임없이 변화한다.시간은 야속하리만큼 빨리 흘러, 어느새 벌써 난 어른이 되어버렸고.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발맞춰 달리고, 성장해야 했는데. 풍경도 그런가 보다. 논을 구경할라치면 산으로 바뀌고, 마을을 지나고 있는가 하면 어느새 기차역에 도착해버린다.기차를 타면 여유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엄마를 보러 고향에 가는 길이었다. 그 길에서 나는 첫사랑이라는 뜨겁고도 담백한 사람을 만났다.그 첫사랑은 나와 같은 도시에 살았다.우린 많이 대화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새벽에는 심야영화를 보고 서로의 회사 앞에서 서로를 기다렸다.우리는 도시에 흔한 커플들이 주로 하는 흔한 연애를 하였다.그리고 한순간의 그 흔한 것을 하지 않게 되었다.첫사랑을 만난 것도 한순간이었지만 헤어지는 것도 고작 한순간이었다.얼마든지 줄 수 있고 얼마든지 잃게 만드는 것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였다.나는 얻었던 만큼 잃었고 나에게
ⓒpixabay처음과 낯선 은 같은 말인 것 같다. 처음과 낯선 이라는 단어는 때로는 기분 좋아지는 말이며 때로는 긴장되게 하는 말이다. 처음이라는 설렘을 가질 수도 있으며 처음이라는 긴장감도 가질 수 있다. 낯선 또한 마찬가지이다. 낯선 이라는 이질감을 가질 수도 있으며 낯선 이라는 새로움이 될 수도 있다. 설렘과 긴장감, 이질감, 새로움 모두 변화에서 생길 수 있는 것들이다. 낯선 것들은 많다. 처음인 것들도 많다. 나는 낯선 곳, 낯선 시간, 처음 하는 일, 처음 먹는 것을 싫어한다. 태어나서 처음 가본 동네가 이질감 들고,
마지막이었다.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겠다고 아득바득 정말 마지막으로 도전한 게 2주 전이었다.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누구보다 열정 하나는 뒤처지지 않으니까, 재능이 있으니까 등등 여러 이유를 핑계 대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남들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줄 때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 오산이었다. 왜? 내가 가진 열정과 노력, 그리고 재능은 ‘나만의 것’이 아니니까, 모두가 가지고 있으니까. 2주 전에도 똑같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남들보다 훨씬 준비를 많이 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