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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시연
ⓒ 오시연

처음으로 만났던 곳은 바다였다.

초여름의 분위기를 머금어 푸르게 빛나던 바다 아에서 우리는 만났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너는 파도의 끝자락같이 새하얀 옷을, 나는 바다의 깊은 곳처럼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자신과 정반대의 사람은 본인을 끌리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하든가. 그때 나는 너에게 끌렸다. 평소와 달리 너스레 떨며 먼저 말을 걸었고 어쩌다가 서로의 연락처도 알게 되었다. 헤어지기 직전 훗날 다시 한번 만나자며 약속을 잡았지만, 빈말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너와 그렇게 끝이 난 줄 알았다. 하지만 너는 진심이었나 보다. 한 달 뒤 너에게 연락이 왔다.

 

두 번째로 만났던 곳도 바다였다.

이제는 한 여름이라는 것이 느껴질 만큼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시원한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너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네가 부담스러울까 억지로 삼켰다. 그러다가 물어본 게 바다를 좋아하냐였다. 그때도 오늘도 너를 만난 곳은 바다였으니 네가 바다를 많이 좋아하나 싶었다. 내 물음에 너는 조금은 특이한 대답을 했다.

"바다 같은 사람을 좋아해요. 그래서 바다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일까. 바다를 좋아한다는 걸까,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바다 같다는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두 번째 의미로 말했다는 것을 알아차렸겠지만, 당시의 나는 첫 번째로 이해했다. 바다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리석었다.

 

바다 같은 사람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되겠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네가 한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했다. 너는 나에게 바다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티 내는 모습을 보며 너는 선을 긋고 알려 준 것이다. 그걸 알아차렸을 때 느낀 것은 부끄러움, 배신감 이런 게 아니라 미안함이었다. 나는 네가 한 말의 의미도 모르고 그 사람이 되겠다고 노력하며 끊임없이 다가갔다. 이미 너는 다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를 봐달라며 파도를 치고 있었다. 그 순간부터 나의 바다는 잔잔해지다 못해 기척을 숨겼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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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라도 있던 물결은 사라지고 조금씩 그 영역은 줄어들고 있었다. 미안함에서 시작하여 자괴감에 빠진 바다는 점점 메말라갔다. 마침내 바다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이 메말랐을 때, 그 땅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바다는 결국 자신의 모든 흔적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메마른 바다는 더는 바다가 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에게 지질하다고 말하더라도 바다는 그게 최선이었다. 바다는 항상 누군가를 기다리고 기껏해야 파도를 칠 줄만 안다. 그게 심해지면 상대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바다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더는 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바다는 메마르기를 선택했다.

이제 바다는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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