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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참 낭만적인 단어 같다. 기차하면 여행, 휴식, 여유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니까. 그래, 참 낭만적인 단어. 오늘은 나도 그 낭만 속에 있고 싶다.

 

창밖 풍경들이 점점 빨리 지나갔다가, 다시 느려지고. 산이었다가, 논이었다가, 마을이었다가.. 끊임없이 변화한다.

시간은 야속하리만큼 빨리 흘러, 어느새 벌써 난 어른이 되어버렸고.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발맞춰 달리고, 성장해야 했는데. 풍경도 그런가 보다. 논을 구경할라치면 산으로 바뀌고, 마을을 지나고 있는가 하면 어느새 기차역에 도착해버린다.

기차를 타면 여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지켜봐 버린 기분이다.

 

난 왜 자꾸 가만히 앉아서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낭만을 찾고 있을까. 여유를 갖고 싶어 하면서도,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에 초조해하는 내가.

그래, 지쳤다. 난 이제 지쳤다. 이젠 인정할 때도 되었지. 잠시 쉬고 싶다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며 기차에 몸을 실었지만, 사실 난 도망친 걸지도 모른다. 날 바라보고, 날 돌봐줄 힘도 없이 지쳐버린 나에게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이 기차에 올라탔는지도 모르겠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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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서울로 가고 싶었다. 사실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다들 서울에 가서 살고 싶어들 하잖아? 나도 그런 마음들에 이끌렸는지, 그냥 어릴 때부터 서울에 가고 싶었다. 서울에 놀러 가고 싶었고, 그다음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었고, 그다음엔 서울에 있는 회사를 다니고 싶었다. 그리고 난 지금 서울에서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서울엔 어떻게 간 거냐고? 나라고 뭐 바로 서울에서 살 수 있게 된 건 아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집 근처 대학을 들어갔고, 서울에 있는 회사를 다니고 싶었지만 나를 받아 주는 회사를 찾아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냥 비슷비슷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새로운 회사를 찾아 이직하고 퇴사하고 입사하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서울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기뻤냐고? 아니, 그냥 이 회사가 좋은 회사이길하는 걱정 반 설렘.. 한 스푼 정도? 이상하지, 어릴 적부터 오고 싶었던 서울인데 하나도 기쁘질 않다니. 진짜 내가 원하던 건 아니었을지도.

 

그렇게 서울에서 보낸 시간이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여러 회사를 이직하며 나는 경력이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고, 그만큼 나의 능력에 대해 기대하고 바라는 것도 많아졌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새로운 회사로 가면서 회사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회사 시스템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모르는 것투성이인 신입사원과 같은 입장인데. 난 신입사원이 아니게 되었다. 왜냐면 난 경력 많은 어른이니까.

 

바쁘다는 것은, 시간이 없다는 것은 진짜로 시간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진짜 수행해낼 시간만 있다는 뜻이었다. 끝내려면 끝낼 수 있지만 다시 돌아볼 시간은 없고, 내가 생각하고 쉴 시간도 없다. 하나가 끝나면 곧바로 하나를 시작해야 했고, 어떨 땐 무언가를 하다가 다른 것으로 넘어가야 하는 날도 있었다. 난 이렇게 바빴다. 이렇게 몇 달을 있다 보니, 잠은 잤는지, 밥은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게 되었다. 배가 고플 때 든든히 밥을 먹고 여유 있게 소화시킬 시간이 없으니 밥을 대충 먹게 되고, 집은 퇴근하고 오면 자고, 일어나면 나가는 경유지 같은 존재였다. 정말 나한테는 집구석이라는 단어가 딱 맞았다.

이렇게 살던 어느 날 답답해하며, 화를 내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잠시 뒤 생각해보니 그렇게 화가 날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내가 누구한테 무슨 화를 낸 걸까 생각하다가.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난 이 기차를 타게 되었다.

 

기차에 내린다고 무엇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향이 뭐 대순가하고 생각했던 나지만 오늘은 좀 보고 싶다. 내가 살아온 흔적들을 다시 보고 싶다. 그러면 내가 뭘 하고 싶었는지, 나의 의욕들은 어디서 왔는지. 기억나지 않을까. 눈앞에 있던 빛을 다시 찾고 싶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 난 왜 서울에 가고 싶었을까. 난 지금 꿈을 이룬 걸까.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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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차가 멈추고, 내가 기차역에 내릴 때 기차역에 꽃이 피어있으면 좋겠다. 날 반겨주는 바람이 불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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