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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랑은 언제나 건조했다.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히는가 하면 금방 수분을 잃고 말라비틀어지기 일쑤였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고 이게 내 운명이라 여기며 나조차도 만족하지 못할 합리화를 해왔다.

 

 자랑은 아니지만, 한 번도 내가 먼저 다가간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 모두 먼저 나에게 다가와 주었으며, 나의 호감 또는 마음을 얻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맞춰 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게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그냥. 그러한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거나 완강히 거절했다면 차라리 나았을걸. 보잘것없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고 나를 맞춰 주려는 사람들이 고맙고 또 고마웠다. ‘감사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착각한 시점부터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난 최선을 다했다.

 나와 함께하면서도 외로움을 느끼거나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 치겠지만 말이다. 상냥하고 살갑게 대해주는 건 기본, 답장도 꼬박꼬박 늦지 않게 했으며 온갖 기념일도 잊지 않고 정성 들여 챙겼다. 나름 애정 표현도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돌아오는 건 싸늘한 표정과 함께 넌 너무 무미건조해. 그게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와 같은 대답뿐이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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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해서 상처를 받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내 사랑은 딱 그 정도였으니까. 이걸 사랑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을 네다섯 번 정도 반복하고 나니, 사랑이 두려워졌다기보단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매번 이런 식으로밖에 사랑할 수 없는 내가 미웠고, 그 누구도 이런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이 엄청난 무력감으로 다가왔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감사사랑은 애초에 다른 감정이며 상관관계가 될 순 있어도 인과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 사랑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 진심이 부족했고 그런 나에게 지쳐서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는 듯 이별을 택할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있다면 그 누가 믿을는지.

 

 

 

 정확히 일주일 전이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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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따라 햇빛은 왜 이리 강한지, 알람을 듣지 않고 제 의지로 깬 건 거의 1년 만이었다. 괜히 다른 날보다 푹 잔 것처럼 개운하고 새소리도 아름답게 들리고, 시간은 7시고··· 7? 늦었다, 지각이다.

 

 머리도 채 못 말린 상태로 부랴부랴 뛰어나와 택시를 탔다. 숨을 고르고 정신을 차려보니 라디오에서는 오전 8시를 알리는 멘트가 흘러나왔고, 지각은 면했다는 안도감에 한숨이 절로 쉬어졌다. 시간은 생각보다 느리게 흘러갔고,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아닌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늦잠을 잔 건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커피를 잘 마시지 않지만, 아침도 못 먹었고 마침 시간도 남았으니 직장인 기분도 내 볼 겸 회사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에 들어갔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

 “···제가 방금 뭐라고 했죠?”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 죄송해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아닙니다. 그런 실수 많이들 하세요. 준비되면 진동벨로 알려드릴게요.”

 

 

홀 가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카페 바닥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서 영영 나오고 싶지 않을 만큼 부끄러웠다. 차라리 모른 척해줬다면 덜 부끄러웠을 텐데, 오히려 웃는 얼굴로 저렇게 말하니 더 숨고 싶었다.

 

차라리 커피 기계가 고장 나는 바람에 빈손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길 바랐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동벨은 세차게 울렸고 난 고개를 푹 숙인 채 커피를 받으러 갔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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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 그리고 이거도 받으세요. 감기 걸리실 것 같아서요.”

 

 

직원은 나에게 수건을 건네주며 싱긋 웃었다. 세상에서 제일 무해한 미소였지만, 건조하고 버석버석한 마음뿐인 나에겐 너무 유해했다.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실내 온도 때문인지 수건을 건네주는 그 손이, 마음이 따뜻해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커피는 차갑지만, 오늘 하루는 온종일 따뜻하길 바랄게요.”

 

 

내 진심을 다해 사랑해 보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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