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펑펑 울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눈을 떠보니 휴대폰에서는 12:40 시간을 가르키는 숫자와 05월09 날짜를 가리키는 그 숫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후...."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고 , " 시간 쓸떼없이 잘가네 " 허공에 대고 짜증을 부렸다. 그렇게 휴대폰을 끄려고 하는 순간 딱딱하게 내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0508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바로 어버이날. 내가 엄마한테 소리지르고 싸웠던 어제, 그 날이 바로 어버이 날이었다. 다른 날도 아닌 어버이날. 나는 무색하게도 부모님께 안부
“ 술도 마셨는데 좋아게임 할까? ” “ 민하 좋아 ”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를 보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처음 느낀 순간이.머릿속이 하얘졌고 선우에게 “ 얼만큼 ” 이라고 물어봐야했지만 나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답을 해야 하는 상황과 동시에 까만 하늘에서는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펑펑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눈은 선우를 향했고펑펑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심장도 같이 두근거렸다.
불꽃이 피어오를 때숨을 멎는다너무 아름다워 꺼질까 무서워 아름다운 불꽃 속에누군가의 숨결이 담겨있다불꽃을 피우려 했던 누군가의 것이작디작은 불꽃은 5분이 채 안되는 시간을 못 버틴다불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숨결 속 작은 떨림좌절을 맛본 사람들의 숨결
길고 긴 구멍을 나왔을 때 내 눈앞에 펼쳐진 건 내 침대의 포근한 이불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침대 속을 나와 휴대폰을 보았다.5월 1일 8시 40분 토요일내가 잠시 꿈을 꾸는 걸까? 2014년 5월 1일이라는 숫자가 믿기지 않게도 나의 휴대폰에 있었다.“엄마, 엄마, 엄마”급히 내려가 엄마를 찾았지만 출근을 한 뒤인지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 연락처에서 지희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신호음만 계속됐다.“야 오늘 2시에 만나기로 한 거 파투 내면 안됨”“뭐래, 야 그게 중요한 게
“수능 보느라 수고했다.”12년간의 길고 긴 외로운 마라톤이 드디어 끝났다. 더 이상은 나를 구속할 사람도, 옭아맬 사람도 없어졌다는 생각에 즐거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날 때부터 지방, 그것도 맨 끝 구석에 처박혀 살던 내게 서울이란 동경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나는 수능이 끝나고 만반의 준비를 거쳐 새해 바로 전 날 저녁, 엄마의 불호령을 뒤로한 채 서울로 향했다.처음 와 본 서울은 말 그대로 시장통이었다. 밤인데도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내 발 디딜 틈 하나 없어보였고 사람들은 모두 정신없이 어딘가로 걷고, 뛰어갈 뿐이었다
챙그랑―! 결국 깨어져버리고 말았다.손끝에서 달랑거리던, 온전한 유리컵이었을 소주잔을 뒤로 하고 어두운 천막을 나왔다.밤바람이 차기에 술기운에 뜨뜻해진 손바닥을 뺨 위에 올렸다.달아오른 머릿속의 열기가 조금 씻겨 내려가자 주변의 소음이 들어차기 시작했다.늦은 새벽까지 이어진 호객행위는 인근을 모두 혼잡스럽게 만들었다. 소란한 거리를 벗어나 걸음을 옮겼다.발걸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지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주막촌을 비틀거리며 몇 번 팔이 붙들렸던 것도 같다. 야트막한 잔디 언덕 위에 앉아 있자니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옆구리에 온
그 축제에서의 불꽃놀이는 참 아름다웠지. 너는 저런 게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어.다 우리 등록금일 뿐이라고, 하나도 안 예쁘고 그냥 팡팡 터지는 쓰레기일 뿐이라고 잔뜩 심통만 냈었어.나는 그냥 다 좋았어. 너랑 같이 보는 축제도, 불꽃놀이도. 다 좋았는데. 그래도 네 옆에서 맞장구쳤었지.네가 화를 내던 이유는 내가 잘 알아. 네 애인이 갑자기 깨버린 약속에 화가 나고 서러웠던 거였잖아.그래서 대타로 날 불렀던 거고. 나와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날 보자마자 얼른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 갔어. 나도 네 뒤를 얼른 따라가
한 번, 두 번, 세 번. 전화는 꺼졌고 나는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기절하듯 잠이 들려는 찰나, 또 한 번 울려 퍼지는 전화벨소리는 내 신경을 긁어 놓기에 충분했고,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베개에 한쪽 볼을 파묻어버리고 귀에 전화기를 갖다 대었다. “여보세요”“니 이번에도 안 올거가” 인상이 구겨졌다. 어릴 땐 이 목소리를 참 좋아했던 것 같은데. 커가면서 그녀의 목소리는 유리창에 손톱을 긁는 소리 마냥 짜증 나고 소름이 끼쳤다. 그녀의 어투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내 눈치를 살살 봐가며 나를 달래는 듯한 목
“미래에서 기다릴게.”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봤다는 유명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다. 평소 만화를 잘 보지 않는 나지만 요즘 대세라는 한 인기 남배우의 패러디로 곳곳에서 난리인지라 안 볼래도 안 볼 수가 없었다.흔하디 흔한 시간여행 설정. 대체 저기서 무슨 설렘을 느끼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정확히 몇 년 후인지도 안 말하면서 무슨 대책없이 미래에서 기다리래?지루한 한숨을 내뱉고 이미 몇 번도 더 본 영화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시간 여행. 과학이 이렇게나 발전한 시대에도 절대 풀지 못한 수수께기 중
“야 인턴!” 오늘도 어김없이 부장님이 나를 찾으시는 소리가 들린다.미친 듯이 앞만 보고 달려와 취업에 성공했지만 아직 인턴인 나는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네!”“야, 너 이거 똑바로 한 거 맞아?”“네..”“근데 왜 하나도 안 맞아!”“죄송합니다.”“죄송하다고 하면 다야? 지금 이게 몇 번째인지 알아?”“죄송합니다.”“죄송하다는 말 좀 제발 그만 좀 하자 어? 처음부터 똑바로 해오면 이럴 일도 없잖아.”“네! 다시 해오겠습니다.”“똑바로 좀 하자 똑바로” 매일 듣는 소리지만 여전히 혼나는 건 적응이 되지 않는다.풀이
2018. 4.26 벚꽃잎이 떨어질때 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검은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서로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며 결혼을 한다. 몇개월 후 그들에겐 아주 예쁜 딸아이 하나가 태어난다. 말도 안듣고 개구쟁이에 엄마의 손을 많이 타 한여자에서 엄마가 된 그녀의 품에서 떨어질 테면 세상 떠나갈 듯이 울던 딸아이. 어느새 예쁜 아이가 자라 학생이 되고 예쁜 성인이 되었다. 엄마가 된 그녀에게 가장 사랑하는 딸아이가 성인이 될때까지 한 여자와 한 남자는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었다. 딸아이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엄마와 아빠가 되었다. 나야
이 시린 겨울을 견디기 힘들어 봄을 향해 달려갑니다. 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우리 꼭 다시 만나요. 그는 이 말 한마디를 편지에 쓰고 사라졌다. 그 후 그가 발견된 곳은 차가운 강바닥 저 아래.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추운 것이 싫다면서 그렇게 추운 곳으로, 그것도 제 발로 걸어갔던 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편으론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너는 이 삶이 그 차가운 겨울 강보다 시렸던 것이지. 그리고 믿었을 거야. 이 세상의 반대편에는 봄만 있을 거란 거. 현실적으로 말해주고 싶지만 너는 이미 현실에 없으니 나도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무척이나 어렸었지. 겨우 남의 도움없이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너는 금세 어린 나의 마음을 한 번에 가져갔다. 그 이후로도 우린 계속 우연인 듯 아닌 듯 마주쳤고 그럴 때마다 나는 너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사실 내가 먼저 네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는 건 말할 수 없는 작은 비밀이지만.너는 내가 특별한 날일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런 날 너를 보게 되면 나의 특별한 기분은 더 말할 수 없이 좋아졌다. 너는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가오는 다른 것과 달리 수수하게 예쁜 색만을
흐들어지는 벚꽃 아래에 울고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왜 우는 걸까? 너무 궁금한 나머지 물어 보았다.“당신은 왜 울고 있나요?”붉게 충혈 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소녀는 훌쩍이며 얘기했다.“벚꽃의 마지막 순간을 작별하고 있기 때문이죠”나는 의아했다. 내년에 또 볼 수 있는 벚꽃인데 왜그리 눈물을 흘리는 걸까? 난 속으로 삼킨 후 그녀를 지나쳤다.집으로 들어와 짐을 풀며 창 밖으로 흐들어지는 벚꽃을 봤다. 한 겹 한 겹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에 그 소녀가 문득 생각 났다. 내가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그 소녀에게서 찾은 느낌이었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서 집으로 돌아왔다.방에 들어와 불을 켜자 그제서야 참고 있었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방안에 가득한 너와의 사진들이 나를 하염없이 울게 만들었다.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멀어진 걸까시간을 가지자는 한 마디 말만 남긴 채 그렇게 나를 두고 가는 게 너에게는 최선이었을까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잘 맞다 생각했는데그것마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걸까 부정하고 싶었다.너의 그 변해버린 마음도 시간을 가지자는 너의 말도아니라고 아닐 거라고너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와 나를 꽉 안아줄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러기엔 너의
도훈이가 옆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심장이 벌렁거리고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애들이 왜 이렇게 볼이 빨갛냐고 물어보면 난 형식적인 거짓말을 해댔다. "술 마시면 내가 좀 빨개져서 그래" 멋쩍은 웃음과 알 수 없는 도훈이와 나 사이의 어색함이 싫지는 않았지만, 뭐라 말이라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도훈아 넌 어디 살아?" "서울"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없었다. 스무 고개를 하듯 도훈이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고 도훈이는 계속 단답으로 내 질문에 답했다. 난 답을 받을 때마다 답답한 마음에 한잔 한잔 잔을 비웠다. 질문의 끝이
밤새 앵화가 만개하여그림자 뜬 물이 흘러가기에남겨진 화폭은 스러지고 스러지고 온 산천 짙게 물들였는데지난 임 하나 그리지 못하였구나 조반월 아래를 붉힌 것이어드메서 내려앉은 화엽 부스러기는 아니어라
내 눈에 들어온 도훈을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릴려고 하는 찰라 도훈이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머릿속에선 ‘빨리 고개 돌려야지’ 했지만 나의 눈은 여전히 도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볼이 빨개진 것 같고 내 표정이 어떨지 모르겠는 그 순간 도훈이가 나를 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 어... 어...” 나는 바보같이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두근했고 뭔가 알 수 없는 간질간질함이 내 몸을 타고 돌았다. 그렇게 도훈이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을 계속 생각해고 또 생각하다가 개강파티를 가야
#2 예전 생각나네. 벚꽃 아래서 널 보고 있으면 너는 그 모습이 예쁘다고 카메라를 들기보다는 빤히 날 바라보고 있었어. 아마 우리가 똑같은 온도의 시간을 걷고 있을 때였겠지. 의무적으로 잡은 손과 의무적으로 건네 오는 말들. 이미 그 모습에 질릴 법도 하겠지만 여전히 나는 네가 좋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 더 밝게 행동했던 거야. 몰라주는 네가 서운하면서도 먼저 다가와 준 건 너였으니까 이번엔 내가 더 다가가야 할 차례구나 생각해 노력했고 지금도 애쓰던 중이었다.산책 다음은 밥, 밥 다음은 커피. 분명히 예전과 달라진 게 없는데 우
그렇게나 좋아하던 휘핑크림이 뜨거운 커피 사이로 다 녹아 없어질 때도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무거운 정적을 깨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너의 입을 가르고 튀어나왔다. “...그만 일어날까?” 언제부터였을까.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창에 기대어 대답 없는 질문을 던졌다.여느 때와 같았으면 너의 손을 잡고 걸어왔을 골목의 가로등 빛이 유난히 눈부시다.혼자 사는 집의 문고리를 돌리려 뻗은 손등에 물기가 어렸다.젖은 뺨을 쓸어내리며 안으로 들어서자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가 날카롭다. 어디야. 나는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