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시나리오

ⓒ곽미소

 

한 번, 두 번, 세 번. 전화는 꺼졌고 나는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기절하듯 잠이 들려는 찰나, 또 한 번 울려 퍼지는 전화벨소리는 내 신경을 긁어 놓기에 충분했고,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베개에 한쪽 볼을 파묻어버리고 귀에 전화기를 갖다 대었다.

 

“여보세요”

“니 이번에도 안 올거가”

 

인상이 구겨졌다. 어릴 땐 이 목소리를 참 좋아했던 것 같은데. 커가면서 그녀의 목소리는 유리창에 손톱을 긁는 소리 마냥 짜증 나고 소름이 끼쳤다. 그녀의 어투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내 눈치를 살살 봐가며 나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였는데 그마저도 내 귀에는 어떤 귀신의 곡소리보다 소름 끼치게 들렸다.

 

“갑자기 전화 해선 무슨 소리야”

“아니, 집에 안 온 지도 좀 됐고, 그캐서 그라지. 이번에는 엄마가 맛난 거 해주께, 응? 내려 온나”

“엄마는 나 바쁜 거 뻔히 알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와?”

 

이래선 안됐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피곤과 쌓인 억울함은 내 속에서 똘똘 뭉쳐져 총탄이 되어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거는 뭐 휴일도 없나. 토, 일요일에 잠깐 내려오면 되잖아. 안 글나”

“없다고, 휴일 없어, 휴일에 쉬기도 바빠 죽겠는데 거기가 어디라고 잠깐이래.”

“돈 없어서 그렇나. 차비 줄게 내려 온나, 어?”

“싫다잖아! 몇 번 말해야 알아들어? 내가 가기 싫다고 했잖아!”

 

결국, 울컥 터져버려 그녀에게 나는 한밤의 폭격기 마냥 그녀의 가슴에 총탄을 박아 넣었다. 그냥 받지 말걸, 받아버리지 말걸 하는 생각이 물 밀 듯 밀려들었지만 이미 늦은 걸 알기에 내 입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왜 못 가는지 엄마는 모르잖아. 모르면서 왜 자꾸 강요만 하는데, 힘들어 힘드니까 못 내려가겠고 안 내려간다고. 그러니까 제발 좀. 강요하지 마”

“…”

 

한참의 정적이 이어졌고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밤에 애처럼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씩씩댔다. 그녀는 잘못한 게 없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로 그녀가 잘못한 것처럼 몰아세우기 바빴고 내 감정만 중요시했다. 그녀는 나를 기다려준 것인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후자였다 믿었고, 그녀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밥 잘 챙겨 먹고, 끼니 거르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꼭 전화하고.”

“…”

“끊는다. 엄마도 없는데 거기서 울면 누가 달래주겠노. 울지 말고. 내일 또 회사도 가야지. 끊자”

 

이렇게 소리치면 예의 없다고 더 혼내던 그녀였는데, 그녀는 이제 작은 한숨만 내쉴 뿐 내 말에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전화가 끊기고도 한참을 쏟아낸 눈물은 베개를 온통 축축하게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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