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시나리오

▲ ⓒ이현지

 

 

그렇게나 좋아하던 휘핑크림이 뜨거운 커피 사이로 다 녹아 없어질 때도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무거운 정적을 깨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너의 입을 가르고 튀어나왔다.
 

“...그만 일어날까?”
 

언제부터였을까.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창에 기대어 대답 없는 질문을 던졌다.

여느 때와 같았으면 너의 손을 잡고 걸어왔을 골목의 가로등 빛이 유난히 눈부시다.

혼자 사는 집의 문고리를 돌리려 뻗은 손등에 물기가 어렸다.

젖은 뺨을 쓸어내리며 안으로 들어서자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한기가 날카롭다.
 

어디야. 나는 이렇게 머물러 있는데 너는 어디까지 흘러가버린 거야.

 

 

우리는, 그러니까 너와 나는 남부럽지 않은 보통의 연인이었다.

너로 인해 시작된 관계는 여러 계절을 거쳐서도 여전했고 여전할 줄 알았다.

사실 처음부터 네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가벼운 말투와 행동이 애써 밝아 보이기 위함이었다는 걸 알기 전까진 말이야.

너의 달아오른 마음이 나를 데우기 한창이었을 무렵 나는 그저 미지근한 관심을 내비칠 뿐이었다.
 

‘이제는 먼저 연락하기 전까진 오지도 않네…‘
 

대화창의 사라지지 않는 ‘1’을 보며 중얼거렸다.

전화는커녕 흔한 문자하나 오지 않으니 괜스레 마음이 가라앉는다.

‘뭐해? 밥 먹었어?’와 같은 안부인사는 고사하고, 최근의 대화는 전부 내가 질문을 하면 네가 답을 하는 식이다.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고 했던가.

나보다 훨씬 먼저 시작한 너는 혼자 차가운 밤을 얼마나 걸었을까.

네가 견딘 시간만큼, 벌어진 간격을 좁혀가야 하는 걸까.

생각이 엉키고 머릿속이 다시 흐트러지려 할 때 즈음 휴대폰 진동이 짧게 울렸다.
 

[ 주말에 벚꽃 보러 갈래? ]
 

형식적인 데이트 신청은 의무감과 죄책감에 하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이제야 타오르기 시작한 내 불씨는 어쩌면 불꽃이 되기 전에 꺼져버릴지도 모른다.

아직 놓고 싶지 않은데, 너를 떠나보내는 게 맞는 걸까.

남겨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느 사이에 미적지근해진 너의 마음을 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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