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포토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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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보느라 수고했다.”

12년간의 길고 긴 외로운 마라톤이 드디어 끝났다. 더 이상은 나를 구속할 사람도, 옭아맬 사람도 없어졌다는 생각에 즐거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날 때부터 지방, 그것도 맨 끝 구석에 처박혀 살던 내게 서울이란 동경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나는 수능이 끝나고 만반의 준비를 거쳐 새해 바로 전 날 저녁, 엄마의 불호령을 뒤로한 채 서울로 향했다.

처음 와 본 서울은 말 그대로 시장통이었다. 밤인데도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내 발 디딜 틈 하나 없어보였고 사람들은 모두 정신없이 어딘가로 걷고, 뛰어갈 뿐이었다. 멀뚱히 서 있는 내게 관심조차 없어보였다. 처음 보는 서울의 모습은 다들 뭔가에 홀린 풍경이었다. 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제일 먼저 가보고 싶던 남산 타워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떼는 순간 그대로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
“아야...”

정작 엉덩방아를 찧은 건 나구만 아픈 소리는 자기가 더 내고 있었다. 남들이 볼까봐 잽싸게 일어서 그 사람을 노려봤다. 머리가 살짝 샛노랗기도 하고 어째 주황빛도 도는 게 뭔진 몰라도 확실히 수능 끝난 사람이라는 건 알만했다. 먼저 미안하다며 사과를 한 그 애는 한 가득 멘 내 가방을 슬쩍 보더니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어왔다.

“남산 타워.”
“남산 타워? 거기 별로 볼 거 없는데.”

울컥. 자기는 서울 산다 이거지? 살짝 배알 꼴리는 그 애의 말에 눈을 흘겨주고는 지하철을 타러 걸음을 재촉했다. 사실 지하철도 난생 처음인 내게 서울에서 남산 타워로 가는 지하철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스마트폰 하나 믿고 서울로 상경한 내게 무서운 건 없었다. 그쪽으로 가는 거 아닌데. 간 줄 알았던 그 애는 언제 따라왔는지 내 뒤에 서서 지하철 노선도를 함께 훑고 있었다. 살짝 붉어진 얼굴을 돌리며 그럼 네가 알려주던가, 라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 애는 똑바로 마주친 내 눈에 놀란 듯이 고개를 돌리며 따라오라고 했고 나는 좀 자존심이 상하지만 군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뒤에서 보는 그 애 귀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와-"

처음 보는 남산 타워의 모습에 나는 그냥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체 사람이 어디까지 늘어져 있는 건지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늘이 새해 전 날이라 그래. 옆에서 읊조리는 그 애의 말을 흘려들으며 이게 사람 무덤인지, 계단인지 헛갈리는 모습을 보고 계단을 올랐다. 결국 정상에 다다른 내게 그래도 나름의 보상은 주어졌다. 한 눈에 펼쳐진 서울의 야경. 입을 벌리고 그 모습을 눈에 담기가 무섭게 또 사람에 치여 창문쪽에서 멀어졌다. 자기는 이미 많이 본 풍경이라는 듯이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고 있는 그 애를 보니 괜히 더 신경질이 나려고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데려다 준 성의를 보아 애써 참겠다 마음 먹었다.

"곧 있으면 불꽃놀이 할 건데 안 보고 가?"
"서울까지 와서 그거 볼 시간이 어딨어."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계단을 도로 내려갔다. 금방 떨어질 줄 알았던 그 애는 오기있게 내게 따라붙어왔다. 그만 따라오라고 한 소리 하려는데 그 순간 나를 밀치고 지나간 사람때문에 계단에서 뒹굴었다. 아니, 뒹굴 뻔했다. 그 애가 내 팔을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저 아래까지 굴러가서 서울 구경은 커녕 바로 집으로 소환됐겠지. 오늘 이래저래 빚을 지고만 있었다.

"...고맙다."
"뭐 별로..."

어색한 인사를 뒤로 하고 손을 떼려하는데 그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별 하나 보이지 않던 새까만 서울 밤하늘이 수십개의 별로 물들었다. 그 모습에 손을 떼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계단에서 그대로 넋 놓고 하늘만 바라봤다. 사람들의 얼굴에 노란빛, 빨간빛, 주황빛이 번갈아 뒤덮였다. 여태껏 봐온 불꽃놀이와는 이상하게도 느낌이 달랐다.

뎅- 뎅- 뎅-

어디선가 들려오는 보신각 종소리에 이제 새해가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덕담을 건넸고, 내 팔을 잡고 있던 그 애도.

"해피 뉴 이어."

살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그 애의 머리카락에 불꽃이 스며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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