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시나리오

ⓒ이현지

 

#2

 

예전 생각나네. 벚꽃 아래서 널 보고 있으면 너는 그 모습이 예쁘다고 카메라를 들기보다는 빤히 날 바라보고 있었어. 아마 우리가 똑같은 온도의 시간을 걷고 있을 때였겠지.

 

의무적으로 잡은 손과 의무적으로 건네 오는 말들. 이미 그 모습에 질릴 법도 하겠지만 여전히 나는 네가 좋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 더 밝게 행동했던 거야. 몰라주는 네가 서운하면서도 먼저 다가와 준 건 너였으니까 이번엔 내가 더 다가가야 할 차례구나 생각해 노력했고 지금도 애쓰던 중이었다.

산책 다음은 밥, 밥 다음은 커피. 분명히 예전과 달라진 게 없는데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간의 온도 차가 생겼을까. 궁금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카페에 들어와 앉아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고, 많은 사람 사이 우리만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한 분위기가 나를 압박했다. 그 분위기를 나만 눈치채고 있는 건지 너는 그 분위기 속에 묻혀 커피만 들이켤 뿐이었다. 결국, 너는 내가 먼저 당기지 않으면 먼저 당겨오지 않았다.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커피잔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들려오는 작은 한숨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고, 고개를 들어 널 보면 너는 피곤한 듯 턱을 괴고 앉아서 책상을 톡톡 두드리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피곤하면 먼저 가”

“아냐, 나 괜찮아”

“너 진짜 오늘 나오고 싶어서 나오긴 한 거야?”

“..뭐?”

 

울컥하는 마음에 그대로 뱉어버린 진심. 3초의 정적 뒤 들려온 네 대답에 나는 네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해야 해. 이렇게 두드리다 다시 열리긴 하는 거야? 확신이 없어서 제대로 숨도 못 쉬는 날 네가 알긴 해? 목 끝까지,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 말들이 파스스 흩어지고 한숨을 푹 쉬고 그대로 일어서버리는 너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널 올려봤다.

 

“시간 좀 가지자 우리”

 

저 말이 뭘 의미하고 있는지는 알까. 순간 멍해지는 느낌에 멍청하게 널 보고만 있으면 너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리할 시간 필요한 것 같아서, 연락할게.”

 

널 한번 잡아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널 보냈다. 화도 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네 말에 반박할 수도 없었다. 다 사실이었기에. 정리할 시간이 필요 하단 거. 그치. 우리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지. 근데 나는 무서워서 먼저 꺼내지 못했던 말인데, 너는 그게 참 쉽다. 쉽게도 그런 말이 나오는구나.

아직 뜨거운 커피를 손에 쥐고 있는 나와 이미 다 마셔 바닥을 보이는 아이스커피를 두고 일어선 너. 우리는 같았지만 확연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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