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시나리오

ⓒ공유나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불안감을 바탕으로 무럭무럭 자라나는 내 상상력이라고 말이다. 피피티 완성 안 되면 어떡하지, 아니 피피티가 완성돼도 그걸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수정해야 한다면…
발표 전날까지 나는 내 상상력을 무시할 수 없었고, 부디 그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나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피피티랍시고 발표 전날 올린 자료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공대생 아닌 거로 아는데, 미적 감각이 혹시 태아에서 멈췄나.”

최악의 피피티라고 검색하면 딱 나올만한 디자인의 피피티에 스크롤을 황급히 내려버렸다.
피피티를 첨부하면서 자료가 좀 부족한 것 같다며 잔뜩 거들먹거리던 그의 태도가 생각나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자료 조사를 할 거면 논문을 찾던가, 포털사이트 지식백과에,

“얼씨구, 뭐, 기자의 꿈을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블로그 글을 그대로 긁어와 피피티에 첨부해놓은 것에 기함하며 출처를 찾아보니 초등학교 4학년이 쓴 글을 떡하니 붙여왔더랬다. 헛웃음을 지을 시간도, 소리를 지르며 울 시간도 없었다. 발표까지는 꼬박 12시간이 남았다. 해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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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췌해진 내 몰골과 달리 수업시간에 들어오는 그들의 모습은 어젯밤 팩이라도 하고 잔 듯 광이 났다. 한숨을 푹푹 쉬며 그들보다 앞자리에 앉았고, 수업은 시작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길이 안 들어간 곳이 없으니 발표는 깔끔하고 부드러웠다. 다만 조원들 쪽으로 조금이라도 시선을 돌리면 명치 쪽을 누가 때린 듯 콱 막히는 기분이 들어 시선도 두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표정을 가늠할 순 없었지만 고마워하리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변은 없는 듯했다.

“이상, 발표 마칩니다.”
“수고했어요.”

마지막 감사합니다. 라는 창을 띄우고 인사를 한 뒤 그냥 들어가기가 너무도 아쉬웠다. 사실은 저 피피티 맨 첫 번째 장에 오타가 있다면서 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지웠어야 했는데, 아니면 교수님께 여기 프리라이더가 있다며 고래고래 소리라도 질렀어야 했는데. 모든 게 다 아쉬웠다

“자, 발표자 앞에 서 있고 나머지 조원들도 앞으로 나와보세요”
“네?”
“첫 시간에 얘기하지 않았나요? 이 주제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다고 말씀드렸을 텐데.”
“아… 그런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교수님.”
“그래도 나와봐요. 자신이 맡은 파트가 있을 텐데 발표자 한 사람만 앞에 서서 다 아는 척하기엔 좀 아깝지 않아요? 나와서 아는 척해도 돼요. 아니면 다른 분들은 아는척 할만한 게 없는 건가?”

조원들은 당황하며 항변했지만, 교수님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조원들을 모두 단상으로 불렀다. 질문 받겠습니다.라는 말과 동시에 강의실은 정적만이 흘렀고 교수님은 그럴 줄 알았단 표정으로 혼자서 질문을 던졌다.

“아, 그게, 저기.”
“아, 그게, 저기 아니면 할 말이 없는 건가?”

나를 빼고 모든 조원은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해 보다 못한 교수님이 들어가라며 손짓했다. 발표자 말고는 제대로 팀별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은 것 같네요. 이 점은 추후 성적 반영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수업이 모두 끝났고 조원들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수님께 마지막으로 변명하려는 듯했지만 교수님은 단호한 태도로 짐을 챙겨 강의실을 나갈 뿐이었다.

나 또한 강의실을 벗어났고, 다른 수업이 끝난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그러게 잘 좀 하지 그랬냐. 앞으로도 그렇게 조별과제 도망다니면서 잘 먹고 잘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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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은 없었다. 한바탕 욕을 하며 싸우는 장면도, 우리도 다 자료조사며 피피티에 참여했는데 교수님께 말씀 좀 해주시면 안 되냐는 싹싹 비는 장면도, 다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상상일 뿐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윤님이 대화방을 나갔습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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