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시나리오

▲ ⓒ공유나

 

[죄송한데 집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못 갈 것 같아요ㅠㅠ]

[선배 저 지금 엄마가 아프셔서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저 통학이라 아까 출발했는데 지금 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못 갈 거 같은데 어쩌죠..ㅠ]

 

기가 막혔다. 어쩜 셋이 저렇게 호흡이 잘 맞을까. 턱까지 차오른 욕을 삼키고 전화를 걸었다. 결과는 뻔했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기숙사도 자취도 아니고 통학이라 차 밀릴까봐 미리 와 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렇다고 혼자 덮어쓸 수는 없었다. 단톡에 공지를 남겼다. [저희 오늘 아무도 못 올 것 같아서 토요일에 다시 볼게요.] 카톡을 남기기가 무섭게 1이 사라졌다. 그리고 셋은 입을 모아 말했다.

 

[토요일에 일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아요 ㅠ]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럼 대체 언제 만나서 하겠다는 거야? 분노의 타자를 쳤다. 그럼 대체 언제 시간이 된다는 거세요 다들. 아까는 그렇게 빨리 사라지던 1이 지금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고 노랗게 떠 있었다. 그걸 보는 내 얼굴도 누렇게 뜰 것만 같다.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가 이렇게 지금 화를 내면 아무도 안 볼거라는 반 사실적인 직감이 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카톡을 다시 보냈다.

 

[다들 바쁘신가 봐요. 그럼 그냥 사다리타기로 정해서 역할 나누고 토요일까지 보내는 건 어떨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숫자가 사라졌다. 허. 헛웃음이 나왔다. 좋은 것 같다는 사람들의 반응에 그래 이런 반응이라도 어디야, 라는 마음으로 나를 가라앉혔다. 결과는 내가 발표가 되었고 자료 조사 2명 피피티 1명이 됐다. 다들 수긍하는 거 같아 다행이었다.

 

[자료 조사 하시는 분들이 목요일 저녁까지 넘겨주시고 피피티 하는 분이 일요일 저녁까지 보내주시면 될 거 같아요!]

 

다들 대답은 잘했다. 제발 맡은 일도 잘해오길. 기도를 올리며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럴 줄 알았다. 오늘까지 자료를 넘겨줘야 하는 두 사람이 잠수를 탔다. 아무리 연락해도 받지 않는 그 사람들을 이미 상상으로는 반 없애놨다. 피피티 하는 사람에게 일단은 둘이 하자며 얘기를 했지만 자기는 피피티 분량이 많아 자료조사까지 하면 힘들 거 같다길래 결국 화를 참고 내가 자료 조사를 하게 됐다. 자료 조사를 위해 웹 서핑을 하며 다짐했다. 두 사람 이름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빼리라.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피피티 하는 사람에게 자료를 넘겨주었다. 고맙다는 말 하나 없이 읽고 씹는 태도에 화가 났지만 애써 참았다. 그래 저 사람은 탈주 안 했잖아. 내가 참자. 저 사람까지 사라지면 피피티까지 내가 도맡아야만 했다. 그런 최악의 사태는 막고 싶었다. 오늘도 협동심이라는 이름 아래 도를 닦는 날이었다.

 

 
저작권자 © MC (엠씨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