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승. 그는 등단 3년 만에 ‘현대시의 새 영역을 개척하였다’는 말과 함께 ‘언어의 마술사’라는 별칭도 얻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건 ‘새 영역’일 것이다. 많은 이들은 황병승 시인의 시에서 새로움 보다는 낯설음과 충격을 먼저 얻었다고 한다.

 

 

▲ⓒ문학과 지성사/ 네이버 책

 

 황병승만의 낯설음과 충격을 모두 담아 세상에 처음 내놓은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

 

 그의 시에서 늘 말하고자 하던 공간들은 하위문화, 퀴어, 분열된 주체, 잔혹극 들이었다.

 실제 시에서 자유로이 넘나드는 과감한 단어들과 표현들. 그의 시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다른 시인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했다.

     
 

<여장남자 시코쿠>

 

하늘의 뜨거운 꼭짓점이 불을 뿜는 정오

 

도마뱀은 쓴다

찢고 또 쓴다

 

(악수하고 싶은데 그댈 만지고 싶은데 내 손은 숲 속에 있어)

 

양산을 팽개치며 쓰러지는 저 늙은 여인에게도

쇠줄을 끌며 불 속으로 달아나는 개에게도

 

쓴다 꼬리 잘린 도마뱀은

찢고 또 쓴다

 

그대가 욕조에 누워 있다면 그 욕조는 분명 눈부시다

그대가 사과를 먹고 있다면 나는 사과를 질투할 것이며

나는 그대의 찬 손에 쥐어진 칼 기꺼이 그대의 심장을 망칠 것이다

 

열두 살, 그때 이미 나는 남성을 찢고 나온 위대한 여성

미래를 점치기 위해 쥐의 습성을 지닌 또래의 사내아이들에게

날마다 보내던 연애편지들

 

(다시 꼬리가 자라고 그대의 머리칼을 만질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약속하지 않으련다 진실을 말하려고 할수록 나의 거짓은 점점 강렬해지고)

 

어느 날 누군가 내 필통에 빨간 글씨로 똥이라고 썼던 적이 있다

 

(쥐들은 왜 가만히 달빛을 거닐지 못하는 걸까)

 

미래를 잊지 않기 위해 나는 골방의 악취를 견딘다

화장을 하고 지우고 치마를 입고 브래지어를 푸는 사이

조금씩 헛배가 부르고 입덧을 하며

 

도마뱀은 쓴다

 

찢고 또 쓴다

 

포옹을 할 때마다 나의 등 뒤로 무섭게 달아나는 그대의 시선!

 

그대여 나에게도 자궁이 있다 그게 잘못인가

어찌하여 그대는 아직도 나의 이름을 의심하는가

 

시코쿠, 시코쿠

 

붉은 입술의 도마뱀은 뛴다

 

장문의 편지를 입에 물고

불 속으로 사라진 개를 따라

쓰러진 저 늙은 여자의 침묵을 타넘어

 

뛴다, 도마뱀은

 

창가의 장미가

검붉은 이빨로 불을 먹는 정오

 

숲 속의 손은 편지를 받아들고

꼬리는 그것을 읽을 것이다

 

(그대여 나는 그대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렬한 거짓을 말하련다)

 

기다리라, 기다리라!

 

여장남자 시코쿠, 황병승

 

 그의 첫 시집의 제목이자 대표 시이다. 단순히 여장남자 행세하는 시코쿠를 얘기하는 것이 아닌, 어딘가 가벼운 느낌의 제목과 묵직한 단어들이 이루어내는 낯설고 수상한 사랑이다. 단순히 짐승이 짐승에 머물러있지 않고, 인간이 인간에 한해져있지 않다. 그는 늘 자신만의 공간과 자신만의 뜻을 지닌 단어를 재창조하는 기분이다.

 

 사실 이 시집과 이 시인을 소개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된 시는 ‘여장남자 시코쿠’가 아니다.

 황병승 시인이 ‘여장남자 시코쿠’시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라 밝힌, 그리고 감히 내가 뽑은 그의 최고의 시는 ‘메리제인 요코하마’이다.

 

<메리제인 요코하마>

 

메리제인

우리는 요코하마에 가본 적 없지

누구보다 요코하마를 잘 알기 때문에

 

메리제인, 가슴은 어딨니

 

우리는 뱃속에서부터 블루스를 배웠고

누구보다 빨리 블루스를 익혔지

요코하마 거지들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너는 걸었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항구의 불빛이 너의 머리색을 다르게 바꾸어 놓을 때까지

 

우리는 어느 해보다 자주 웃었고

누구보다 불행에 관한 한 열정적이었다고

 

메리제인, 말했지

 

빨고 만지고 핥아도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슬픔이 지나간 얼굴로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요코하마

 

메리제인 요코하마, 황병승

 

 혹자들은 이 시를 읽고 감탄했고, 혹자들은 이 시를 읽고 비판했다. 뚱딴지같은 소리만 나열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사실 황병승 시인의 시는 항상 극적인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시를 늘 ‘해석’하려 했으며 시가 주는 ‘느낌’은 언제나 두 번째가 되어있었다.

 

 메리제인 요코하마에서 나오는 단어와 구절 모두 가슴을 두드리기에 충분했다.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처음 접한 시였지만 이 시인의 시가 전해주는 충격은 신선한 충격이었을 뿐이고, 나에겐 낯설음이 아닌 새로움이었다. 누구도 담아내지 못할 그만의 과감함과 수상한 의미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신비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시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고, 개인사를 구구절절이 늘어놓고 싶지 않을 뿐이죠. 습작시절, 시집을 읽으면서 시에 대한 시인의 설명을 듣고 싶지도, 시인의 개인사를 알고 싶지도 않았어요. 시인에 대해 알고 나면 오히려 시가 제대로 읽히지 않아서요."

 

 그는 시의 이해는 독자의 몫으로 돌렸다. 시인이 답안을 내놓으면 의미가 굳혀버린다는 것이 그의 이유였다.

 

 

 애써 내가 해석하려 한들, 무엇이 그대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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