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HO 4호를 읽고
ECHO 4호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위해 혹은 젊음을 즐기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들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그들의 미래를 위해 움직였으며 그 모습이 너무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그 중 특히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 여동조 학우의 인터뷰 글은 가장 내 인상 속에 남았다. 후쿠오사에서 오사카까지 약 600km나 되는 거리를 대중교통도 아닌 히치하이킹으로 갈 생각을 하다니 그의 도전은 정말 무모하고 과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무모한 도전을 했기에 보통 사람들이 여행을 하면서 경험할 수 없는 ‘야산에 텐트 치다가 멧돼지를 만난 적, 폭우로 3일 동안 고속도로 휴게소에 갇힌 적’이 있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러한 경험들은 그의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자리매김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었던 것 중 하나인 ‘홍콩 인턴십’ 활동이 떠올랐다. 정말 무모하고 도전적이었지만 그만큼 나를 더욱 성장시켜준 경험이었다. 사실 이 경험담은 ECHO 1호에 실려 있지만 MC PLUS에 또 한번 공유하고자 한다.
아래는 ECHO 1호에 실린 나의 홍콩 인턴십 경험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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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이맘때 학교-기숙사, 학교-기숙사를 반복하던 나는 학교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어갔다. 그러다 문득 홍콩 인턴십 모집공고를 발견했다. 아직 꿈을 정하지 못한 나에게 홍콩 인턴생활은 꿈을 구체화시켜줄 매개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막연하게 써내려간 자기소개서와 신청서가 그저 상상뿐이었던 내 계획을 구체화시켜줬다.
상상처럼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관광객이 아닌 인턴기자로 홍콩에 향하는 건데 홍콩에 대해 무지했다. 그저 홍콩에 간다는 생각만 했지 내가 기자로서 홍콩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했다. 정말 많이 혼났다. 홍콩 학교와 관련된 기사를 쓰는데 한국과 달리 홍콩은 중등과정을 8년 동안 하는 것도 몰랐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한심스러웠다. 항상 즉흥적으로 일을 진행하고 벌이던 자신에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기사를 작성하기도 쉽지 않았다. 내 전공이 신문방송학과이긴 하지만 기사를 직접 써본 적은 1학년 시절 수업시간에 썼던 기사 서너 개가 다였다. 그런 내가 한국도 아닌 해외에서 번역 기사를 참고하며 어떻게 처음부터 잘할 수 있었겠는가. 자존감이 바닥 아니 지하 저 끝까지 떨어졌다. 회사가기가 무섭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뭐든 하면 는다고 정말 볼품없었던 내 기사도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루 한 개의 기사도 제대로 못 써 혼나던 나는 금세 하루 세 개씩 기사를 썼다. 기본적인 기사를 쓰는 것부터 술술 풀리니 너무 재미있었다. 기사에 욕심도 생겨 ‘이런 내용을 넣으면 더 좋을 텐데’, ‘이런 컨셉으로 기사를 쓰면 좀 더 재미있을 텐데’, ‘이런 인터뷰가 있으면 더 좀 더 좋을 텐데’하며 나 혼자 고민하고 덧붙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기사를 써 나가기도 했다.
취재 나가는 것 역시 정말 재밌었다. 첫 취재로 갔던 글로벌어린이재단 신년행사 취재에서 뵌 기자분은 “새로 오신 기자분이시군요”라며 날 반겼다. 그때 괜히 정말 기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직접 현장에서 취재해 쓴 기사는 번역 기사를 쓰는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배우 이종석이 홍콩을 방문했을 땐 홍콩현지기자들과 다 같이 취재하러 갔었다. 한인 행사가 아닌 큰 행사는 또 처음 접해 보는 것이라 떨렸다. TV에서만 보던 취재현장을 내가 기자의 자격으로 서있다는 것 역시 신기했다.
기사 작성, 현장 취재 이외에도 홍콩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 홍콩 여행은 물론 마카오, 중국 주하이, 심천, 광저우까지 6개월동안 정말 많이 돌아다닌 것 같다. 주 6일 일하는 내게 상이라도 주듯 매주 일요일이면 항상 함께 생활하는 언니들과 함께 구경을 다녔다. 홍콩에서 안 가본 곳은 없다고 자부할 만큼. 또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니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의 문화도 간접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았다.
홍콩을 다녀온 뒤 나는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학교에 다닐 땐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스펙과 능력을 가진 친구들과 있었는데 사회에 나가보니 너무나도 훌륭하고 멋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어는 어렵다고 생각하며 꺼리는 나와는 달리 비슷한 또래인데도 5개 국어까지 가능한 사람도 있었다. 또,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 게으르게 살면 안 되겠구나. 늦기 전에 나도 저들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 한층 더 성장한 내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홍콩에 있으면서 학과 동기, 선후배들에게 홍콩생활 어떠냐는 질문을 엄청 많이 받았다. 사실 무조건 추천해주긴 힘들었다. 왜냐하면 홍콩은 한국보다 물가도 비싸고 주거환경도 열악해 꽤 힘든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난 돈이 없어서 분위기 좋은 식당, 카페 한번 가는 것도 겁을 냈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그것들 역시 나를 성장시켜주는 원동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힘들었지만 힘든 만큼 많이 배웠고 거지같이 살았지만 그것만큼 기억나는 것도 없다. 한국에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홍콩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사귀었다. 항상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후회하는 것도 만족하는 것도.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해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이 해외인턴십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선택하는 데 있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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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경험은 나의 작은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실제로 연예부기자라는 작은 꿈을 가지게 해주었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과 나의 20대를 어떻게 더 알차고 재밌게 보낼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천효진이 되도록 만들었다.
나는 현재 연예부기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꿈들 사이의 갈래에 서있으며 좀 더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 남은 2년이라는 시간동안 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상이 되기 위해 하나씩 준비해 나갈 것이다.
아직 나의 꿈을 정확하게 정하지 못해 나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무엇인지 확신할 순 없지만 고민이 많은 만큼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찾지 않을까, 그리고 2년 뒤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앞으로의 2년을 더욱 알차게 살아갈 것이며 지금부터 기업들이 대표적으로 원하는 커리어를 쌓기 위해 실천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