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지만 깊었던 한 사람의 책임
영화 〈어른 김장하〉를 보고 나면, 한 사람의 삶이 지역과 공동체를 어떻게 지탱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너져 가던 곳에 자신이 가진 것을 묵묵히 내어놓고, 누구도 맡지 않던 자리를 평생 책임으로 삼아 지켜 낸 한 어른의 존재는 오늘의 우리 사회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요즘 우리는 ‘어른 부재의 시대’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그 말은 실은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일종의 질문에 가깝다.
김장하라는 이름이 남긴 가장 큰 울림은 ‘나눔’이 단순한 선행이나 기부 행위를 넘어, 공동체를 움직이는 구조적 동력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빵 한 조각을 나누는 데 머물지 않았다. 누군가의 생애 전체를 붙잡아 줄 수 있는 교육·안전·생활 기반을 꾸준히 마련했다. 나눔이란 결국 ‘당장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투자’임을 그는 몸으로 증명했다. 우리는 때때로 나누는 행위가 왜 두려운지 자문하게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손해를 본다는 감각, 혹은 내가 준 만큼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김장하의 삶은 분명하게 말한다. 나눔의 진짜 목적은 ‘내게 돌아올 몫’이 아니라 ‘이 사회가 더 버티기 쉬워지는 조건’을 만드는 데 있다고.
개인주의가 일상적 세계관이 된 지금, 타인을 신뢰한다는 행위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자기 생존에 급급한 구조 속에서 타인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은 위험 부담을 동반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른 김장하〉는 우리가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다시 상기시킨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은 제도나 시스템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늘 그 바탕에는 ‘누군가 먼저 움직인 뜻밖의 선의’가 존재한다. 한 사람이 길을 만들어 놓아야, 그 뒤를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다. 첫 불이 켜지면 나머지 등불은 쉽게 퍼지듯이.
김장하의 삶은 ‘어른다움’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용히 일러준다. 어른이란 권위를 갖춘 존재가 아니라, 책임을 도망치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책임이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단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묵묵히 해내는 태도에 가깝다. 영화 속 김장하는 그렇게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정직하게 오래 버텼다. 우리 사회가 그에게 마음의 빚을 지는 이유는, 아무도 나서지 않던 자리를 그는 기꺼이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어른은 특별한 능력을 갖춘 영웅이 아니다. 가장 작은 일부터 차곡차곡 해내며, 공동체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토대를 닦는 사람이다. 지역 사회가 살아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작은 행동이 꾸준히 반복되는 힘이 필요하다. 김장하가 보여 준 삶의 방식은 바로 그 꾸준함이 가진 힘을 증명한다. 큰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에 시작했고, 그 시작이 오랜 세월 지역 전체를 바꿔 놓았다.
〈어른 김장하〉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한 명의 선행을 기록으로 보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의 감각, 어른의 자리, 책임이라는 오래된 가치를 다시 불러내는 경험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해내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작은 불을 끄지 않고 옆으로 옮겨 붙이는 일이다. 그 반복이야말로 공동체를 지탱하는 진짜 힘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