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그와의 첫 만남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처음 들은 기억은 먼 과거의 희미한 풍경 속에서도 유독 또렷하다. 나는 여섯 살 무렵부터 조금은 남들과 다른 취향을 가진 아이였다. 또래들이 아이돌 노래를 따라 부르고 부모님의 세대 음악을 흥얼거릴 때, 나는 주머니 안에 작은 MP3를 넣고 다니며 그 속에 담긴 클래식 선율을 듣는 걸 더 자연스럽게 여겼다. 피아노의 구조나 역사도 몰랐고, 음악적 견해가 뛰어났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피아노 음색은 내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흔들었다.

라흐마니노프와의 만남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 시절 나는 여러 클래식 곡을 들으며, 어린아이답지 않게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생이 MP3에 클래식을 골라 넣고, 어떤 곡은 삭제하고 또 어떤 곡은 반복 재생 목록에 넣는 모습이 조금은 귀엽게 느껴지지만, 그 과정은 어린 나에게는 가벼운 놀이 이상의 의미였다. 그렇게 수없이 곡을 넘기던 어느 날, 피아노 협주곡 2번의 도입부가 흘러나왔다. 어두운 심연에서 천천히 피어오르는 듯한 저음의 물결, 그리고 잠시 뒤 피아노가 은빛 파편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지금도 그 첫 감각은 생생하다. ‘아, 이건 내가 모르던 세계다.’ 그렇게 나는 라흐마니노프라는 거대한 이름과 처음 마주했다.

출처 : 중앙일보
출처 : 중앙일보

그 무렵의 나는 학교에서도, 미술 학원에서도 밝은 아이가 아니었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했고, 지나치게 조용하지도, 그렇다고 활발하지도 않은 애매함 때문에 둘 사이 어디에도 서지 못했다. 그래서 왕따가 이어졌다. 친구들의 따돌림은 물론, 담임선생님마저 무관심하거나 동조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던 때도 있었다. 미술 학원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른과 친구 어디에도 기대지 못한 채, 어린 마음은 여러 번 스스로의 자리를 잃었다고 느꼈다.

그런 시절에 나를 버티게 해준 건 클래식이었다. 여러 곡이 위로였지만, 그중에서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이상하리만큼 깊게 스며들었다. 그의 선율에는 단순한 슬픔이나 화려한 비극이 없었다. 그것은 길고 무거우며, 끝까지 버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호흡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어린 나에게 불안도 두려움도 감추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아무도 몰라주는 마음일지라도, 누군가는 이미 그 감정을 품고 지나간 적이 있다고 속삭이는 것처럼.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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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만약 그때 라흐마니노프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나 자신의 감정을 이만큼 솔직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음악은 한 번도 나에게 빠르게 지나가라고 재촉한 적이 없다. 느리고 무거워도 그대로 서 있으라고, 그 상태로도 충분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 글은 그 감정의 시작을 기록하는 첫 번째 조각이다. 내가 왜 그의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왜 여전히 그의 선율을 떠나지 못하는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다음 편에서는 라흐마니노프가 어떤 시대를 살았고, 어떤 고독 속에서 그의 음악이 태어났는지를 함께 따라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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