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197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10년대에 들어서다. 참가자들이 미션을 수행하고 탈락과 생존을 반복하는 ‘서바이벌 포맷’은 이미 익숙했지만, 2016년 Mnet의 <프로듀스 101>은 그 틀을 완전히 뒤집었다. 단순히 실력자를 뽑는 경연이 아니라, 시청자가 직접 ‘아이돌을 만든다’는 참여형 구조를 도입해 한국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프로듀스 101>은 50여 개의 기획사에서 모인 101명의 여자 연습생이 경쟁해, 시청자 투표로 상위 11명이 데뷔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심사위원의 판단에 의존하던 기존 오디션과 달리, 국민이 프로듀서가 되어 직접 투표하고 아이돌의 데뷔를 결정했다. 이는 프로그램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고, 시청자는 자신이 선택한 연습생의 성장 과정을 응원하며 강한 팬심을 형성했다. 이러한 구조는 ‘참여형 콘텐츠’의 성공 모델로 자리 잡았다.
첫 시즌을 통해 탄생한 걸그룹 I.O.I(아이오아이)는 단기간 활동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었다. “가장 이상적인 아이돌(Ideal Of Idol)”이라는 뜻을 담은 그룹명처럼, 방송에서 보여준 다양한 매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남자 버전의 시즌 2에서는 보이그룹 Wanna One(워너원)이 데뷔해, 아이돌 시장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했다. 워너원은 시즌 1보다 길어진 활동 기간과 높은 완성도로 ‘프로젝트 그룹’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세 번째 시리즈인 <프로듀스 48>은 일본과의 합작으로 진행되며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IZ*ONE(아이즈원)은 12명의 한·일 합작 걸그룹으로, 데뷔 이후 국내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실제로 아이즈원 출신 멤버들이 이후 아이브, 르세라핌 등 4세대 대표 걸그룹으로 재도약하면서 ‘프로듀스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강력한 브랜드가 되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마지막 시리즈인 <프로듀스 X 101>은 한국 대중문화에 씁쓸한 기록을 남겼다. 데뷔 그룹 X1(엑스원)은 정식 활동 6개월 만에 ‘투표 조작 사건’이 드러나며 해체되었다. 이후 수사 결과, 모든 시즌에서 조작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바이벌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핵심이던 ‘시청자 참여’가 조작으로 무너진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듀스 101>은 한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변곡점을 만든 프로그램으로 평가된다. 기존 서바이벌이 단순한 경쟁의 장이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팬덤 형성과 소비 구조의 변화를 이끌었다. 시청자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제작 과정의 일부’로 참여하게 되면서, 아이돌 산업은 ‘팬덤 기반의 시장’으로 재편되었다. 실제로 I.O.I와 워너원은 짧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음반 판매량과 광고 수익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프로젝트 그룹 체제의 한계도 분명했다. I.O.I 활동 당시 일부 멤버들이 원 소속사에서 동시에 다른 활동을 병행하면서 일정에 혼선이 생겼고, 이후에는 겸업 금지 조항이 추가되었다. 또한 그룹 해체 후 각 멤버가 재데뷔했을 때 개인 팬덤과 그룹 팬덤 간의 불균형이 심화되어 소속사 간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프로듀스 101>은 ‘시청자가 만드는 아이돌’이라는 혁신적인 구조로 아이돌 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지만, 동시에 상업화와 조작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남겼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은 한국 대중문화가 팬 참여 중심으로 진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분명 하나의 시대적 이정표로 기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