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읽기 전에, 누군가 나에게 논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 한 가지 일화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공자가 길가에서 대변을 본 자를 꾸짖었으나, 길 한가운데에서 대변을 본 자는 그냥 지나쳤다는 이야기다. 제자들이 이유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구석에 있던 자는 마음 한편에 부끄러움이 있으니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길 가운데에서 그런 자는 이미 부끄러움을 잊었으니 가르칠 수 없다.”
한창 논어를 읽겠다고 책을 가방에 넣고 다녔건만, 내 기억 속에는 아이들이 듣고 웃을 법한 이 이야기가 가장 또렷했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논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조금 부끄러워질 것이다. 이 일화가 다른 이야기보다 가르침이 덜한 것은 아니나, 그래도 구태여 이런 일화를 꼽기보다는 좀 더 ‘품위 있는’ 구절을 말하는 편이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조금은 속물적인 마음으로 논어를 다시 펼쳤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고, 개중에는 읽으며 '이것도 논어에 수록된 이야기였나?'하는 친근한 것도 있었는데 그중 내게 인상 깊었던 문장 두 개를 소개해 보겠다.
子曰(자왈) 人之生也直(인지생야직)。罔之生也幸而免(망지생야행이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정직(正直) 때문이다. 정직함 없이 살아가는 것은 다만 요행히 모면하고 있는 것이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살아야 하며, 그렇지 못한 자는 언제라도 화를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만일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함에도 화를 입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이 면죄를 받은 것이 아닌, 단지 운으로 하루를 버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子曰(자왈) 誰能出不由戶(수능출불유호)。何莫由斯道也(하막유사도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문을 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이 도(道)를 따르지 않는가?
나가기 위해서는 문을 열어야 하듯, 도(道)가 모든 것의 이치이니 이를 따라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이 두 문장을 보고서는 공자의 삶을 떠올렸다. 공자는 혼란한 시대에 태어났다. 예(禮)가 무너지고, 세상은 힘과 이익으로 돌아갔다.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 세상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그 뜻을 알아주는 이는 드물었다. '문을 통하지 않고 밖을 나갈 수 없다. 그런데 어찌 도를 따르지 않는가'라는 그 말은 어쩌면 제자들에게 내린 가르침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스스로 던진 물음, 혹은 한탄에 가까운 혼잣말이었을지 모른다.
공자는 어려운 것을 논하지 않았다. 그가 제자들을 가르친 방식은 언제나 단순했다. 제자가 묻는 말에 또 다른 질문으로 답을 돌려, 제자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게 했다. 논어 자로(子路) 편에서 말한 것처럼 “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잘되어 나가고, 자신이 올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내린다 하여도 복종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며, 말보다 행동으로 제자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그의 가르침은 결코 어렵지 않았다. 그가 논한 도(道)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 너무도 당연한 진리였다. 그래서 논어는 겉보기엔 딱딱한 고전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뭐야, 다 아는 말들이잖아’ 하고 웃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논어를 읽으며 스스로에게 정직하자는 것(人之生也直), 그리고 내가 새긴 그 명제가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誰能出不由戶) 이 마음에 남았으나, 이외에도 온갖 가르침이 있는 만큼 전혀 다른 가르침을 받게 될지 모른다. 필수 인문학 도서,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하는 책 같은 말, 한자가 많아 읽기 꺼려진다는 생각과 많이 달랐다. 전하고자 하는 말은 굉장히 간단한 책이었다. 삶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할지, 무엇을 좌우명으로 삼고, 무엇에 기대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논어는 한 번쯤 권하고 싶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