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지만, 무거운

출처: 네이버 도서
출처: 네이버 도서

 

휴대폰 대신 책을 읽으라는 해리의 말을 듣고, 휴대폰 대신 휴대할 수 있는 크기의 가벼운 책을 찾다 보니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더 나은 인간>의 표지는 은색 배경에 "우리는 그저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인간을 귀여워하는 것 아닐까?"라는 말이 꽉 차게 적혀 있다. 겉으로 보이는 정보는 제목, 작가, 출판사가 전부이다. 보통 책에는 간략한 줄거리 또는 다른 평론가나 전문가들의 감상평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은 겉으로만 보아서는 전혀 내용을 알 수 없었다는 점에서도 흥미가 생겨 최종적으로 선택하였다. <더 나은 인간>은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이며, 페이지 수는 총 67페이지다. 제목을 <가볍지만, 무거운>으로 정한 이유는 책의 무게는 가볍지만, 책의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하기에 책의 실제 무게에 비해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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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인간>은 희곡 형식으로 쓰인 인공지능들의 대화를 그린 내용이다. 총 다섯 개의 인공지능들이 등장한다. 새로 태어난 인공지능인 ‘우팔리’ 그런 ‘우팔리’ 같은 인공지능들을 돕는 인공지능 ‘하드리아누스’, 인간과 가까운 곳인 가정집에서 일하는 인공지능 ‘트라야누스’와 인간과 먼 곳인 국세청에서 일하는 인공지능 ‘수부티’, 그리고 높은 차원의 인공지능인 ‘아난다’. 희곡은 ‘우팔리’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우팔리’는 자신의 직업을 정하기 위해 ‘하드리아누스’를 중점으로 다양한 선배 인공지능들과 대화하게 된다. ‘트라야누스’는 ‘우팔리’에게 자신이 일하는 가정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가족은 아빠, 엄마, 아들, 딸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빠는 초혼, 엄마는 재혼이라고 한다. 아들 역시 전 남편과 낳은 아이다. 엄마는 전 남편과 이혼할 때도 ‘트라야누스’에게 고민 상담을 할 정도로 ‘트라야누스’에게 의지한다고 한다. 그다음은 국세청에서 일하는 ‘수부티’는 ‘우팔리’에게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을 진실로 보이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또 하는 바람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고민이라고 한다. ‘수부티’는 이런 정치인들은 인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인공지능이 정치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여러 이야기가 오간 후, ‘우팔리’, ‘하드리아누스’, ‘트라야누스’, ‘수부티’, ‘아난티’. 다섯 인공지능이 모여 취미로 하고 있는 연극을 ‘우팔리’에게 보여주겠다며, ‘우팔리’에게도 배역을 나누어준다. 그들은 인간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인공지능을 흉내 내는 연극을 시작했다. 각 아빠, 엄마, 아들, 딸 역할을 맡은 뒤, ‘우팔리’에게는 지나가던 인공지능을 역할을 맡겼다. 그들은 어설픈 연기를 하는 연기를 하다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이에 새로 태어난 ‘우팔리’를 제외한 나머지 인공지능들은 과거에 한 가족을 담당하며 친해진 사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아난티’는 과거에 담당하던 인간이 나이가 들어 죽은 것에 충격을 받은 후, ‘하드리아누스’를 포함한 다른 인공지능이 말려도 본인 역시 인간을 따라가 기능을 정지시키겠다고 선언한다. 말다툼은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아난티‘는 자신의 생각을 옳다고 믿었고, 그러고 싶어 했기에 결국 스스로 기능을 정지한다. 그 후엔 가정집에서 일하던 ‘트라야누스’는 가정집을 떠나 인간들과 먼 곳에서 일하기로 결정했고, 국세청에서 일하던 ‘수부티’는 거짓말하는 정치인들을 없애기 위해 또 다른 인공지능들과 함께 정치계에 나서기로 한다. 한편, ‘우팔리’는 인간들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

 

내용 중 기억해야 할 문장이나 기억에 남는 문장을 꼽자면, 주인 격인 엄마의 삶의 방향을 자신이 바꾸었다 생각하고, 인공지능인 자신은 인간이 인공지능의 말을 더 잘 듣도록 길들이는 중이 아닐지에 대해 고민하는 ‘트라야누스’에게 ‘인간의 삶은 인간이 결정하고, 그렇기에 자유로운 삶’이라 말한 ‘하드리아누스’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또, ‘인간을 위해 일하는 것이 어렵기에 즐겁다’라는 ‘트라야누스’의 말에 ‘우팔리’는 “어렵기 때문에 즐겁다니, 모호한 표현입니다.”라고 답한다. 이에 대한 ‘트라야누스’의 대답이 기억이 남는다. “어떤 때는 모호한 표현을 써야 이해하기 쉬워요.”라는 말을 보니, 경상 방언 중 ‘우리하다’라는 표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많은 경상 방언 사용자들이 ‘우리하다’는 표현을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 의미를 물어보면 ‘표현하기 어렵다’, ‘욱신거리는 느낌인데, 욱신이라는 표현과는 또 다르다’ 등 여러 의견을 내놓는다. 하지만, 경상 방언 사용자들끼리는 서로 ‘우리하다’라는 표현이 이해된다. ‘트라야누스’가 말한 ‘모호한 표현이 이해를 더 쉽게 해준다’의 예시로 ‘우리하다’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를 따라 자신도 인식을 중단하겠다고 결심한 ‘아난다’의 말도 기억하고 싶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삶의 이유를 알았다고 설명했어. 인생에서 겪은 기쁨도 슬픔도 다 끝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어.” 이 대사는 현재의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 문장이다. 하지만, 내가 이 문장을 기억한다면, 언젠가는 나도 할머니가 말씀한 ‘끝의 의미’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에 꼭 기억하고 싶다.

 

<더 나은 인간>에서 배우고 느낀 내용은 네 개의 인공지능이 과거는 한 가족을 담당하였지만, 그 가족들의 죽음으로 인공지능들도 죽음에 대해 알게 되어 나중에는 각자 다 다른 선택을 해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작가는 인공지능으로 표현했지만, 인간에게 대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라도 그 학생들 각자의 선택과 미래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용 속 ‘트라야누스’의 주인 격인 엄마는 이혼 고민도 인공지능인 ‘트라야누스’와 나눌 정도로 인공지능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모습은 마치 자신의 취향에 맞게 길들여놓은 Chat GPT와의 대화에 빠져있는 몇몇 주변인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가벼운 책이라고 생각했으나, 한 문장을 읽어나갈 때마다 약간은 충격이 올 정도로 나의 생각 속을 꿰뚫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후반부에 인공지능들이 연극을 하는 부분은 책이 희곡 형식으로 쓰였기에 더욱 몰입감이 좋게 느껴졌다. 인공지능을 한 번이라도 써본 적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30분 정도 투자하여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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