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커 포토콘텐츠]

  있잖아, 나는 그 즈음이 오면 항상 너의 잔상이 보여. 여름을 싫어하던 네가 드디어 가을을 맞이했을 때의 빛나는 너의 눈, 선선한 날씨를 즐기고 싶은 너의 신나는 발걸음. 고개를 돌리면 다른 잔상의 네가 내 눈에 걸려. 자꾸만 네가 보여서 있는 힘껏 도망쳐도 너는 자꾸 나를 붙잡아.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네게 또 잡힐 수밖에 없어. 알잖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것 이란 걸. 그냥 내가 널 더 많이 좋아해서 지는 거야. 그게 전부야.

공유마당 - 무등산 노을
공유마당 - 무등산 노을

  너는 차가운 바람에 코가 시린 게 좋다고 했어. 시원한 바람의 향기가 좋다고도 했고, 하나씩 떨어지는 낙엽의 소리도 좋다고 했어. 너를 둘러싼 많은 것들을 좋아하는 일에 나는 없었어. 내 공간은 따로 있었을까? 난 항상 그게 궁금해. 어떤 이유로 나를 붙잡아두었는지, 왜 네가 나를 떠나고도 나를 계속 헤매게 하는지

  나는 사실 추운 계절이 싫어. 뼛속까지 파고드는 찬 기운도 싫고, 옷이 두꺼워져 몸이 둔해지는 것도 싫어. 그래서 처음에는 네가 가을을, 겨울을 좋아하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어. 춥기만 한 계절이 뭐가 좋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글쎄... 온통 물음표였어 나는.

핀터레스트 -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
 핀터레스트 -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

  네가 내게 가르쳐 준 것 중에 제일 좋은 건 나도 이제 바람이 찬 계절을 즐길 수 있게 되었던 거야. 네가 말하던 코끝이 시린 느낌을, 바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차가운 손을 호호 불며 뜨거운 붕어빵을 먹는 것도 좋아해. 낙엽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서리가 내린 나뭇잎의 얼음을 한번 털어보기도 해. 이렇게 나는 겨우, 차가운 공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너는 내 옆에 없네. 네 빈자리를 느끼라고 의도한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성공이야. 나는 덕분에 꽤나 오랫동안이나 너의 잔상을 볼 것 같거든.

드라마 - 도깨비
드라마 - 도깨비

 

  공중에 흩어져 버린 입김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린 너를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나를 버리고 떠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나는 아직 너와 함께했던 그 계절에 머물러서 그때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말이야. 나는 어떻게 해야 해? 그냥 이렇게 흐지부지 끝내면 되는 거야?
시간이 지난 후에 네가 괜찮아지면 나를 찾아줄래? 나는 여전히 그때의 모습을 하고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그때가 되면, 나의 봄과 여름을 가르쳐 줄게. 네가 했던 것처럼 말이야. 따뜻한 날씨가 그리 싫은 건 아니면 좋겠어.

 


기다리고 있을게. 나 보러 꼭 와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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