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이루마의 'Reason'

체온, 장승리
당신의 손을 잡는 순간
시간은 체온 같았다
오른손과 왼손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놓았다
가장 잘한 일과
가장 후회되는 일은
다르지 않았다.

그리움,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닥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잊으려 하니 꽃이 피더이다, 김정한
잊으라 했기에 당신을 잊으려
시간아 흘러라 빨리 흘러라 그랬지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흘러가면 잊힐 줄 알았지요
그런데 시간마저 당신을 놓아주지 않더이다
사무치도록 그리워 가슴에 담은 당신 이름 세 글자
몰래 꺼내기도 전에 눈물 먼저 흐르더이다
당신 떠나고 간신히
잊는 법 용서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 했는데
다시 찾아온 계절은
누군가 몰래 맡기고 간 베르테르의 편지를 안겨주더이다
당신을 사랑하던 봄
지운 줄 알았던 당신의 흔적
곳곳에 문신처럼 박혀있더이다
잊으라 해서 잊힐 줄 알았던 에로티시즘
다시 찾아온 봄과 함께 전신으로 번져가더이다
가늘게 떨리듯 호흡하는 목소리가 아직도 익숙한데
잊으려 하니 그제서야 꽃이 피는데
나 어찌합니까

사모곡, 감태준
어머니는 죽어서 달이 되었다
바람에게도 가지 않고
길 밖에도 가지 않고
어머니는 달이 되어
나와 함께 긴 밤을 같이 걸었다
별, 유희경
스물이었고 겨울이었다.
길 위 모든 것이 얼어붙어 서서히 드러났다.
나는 모진 생각과 싸우고 있었다.
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알 수 없지.
그게 어른이야, 아마.

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엔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녘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내가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풀잎, 원구식
사는 게 염증날 때
당신이 울지 않았으면 참 좋겠다

처음 우는 아이는, 박진성
광기는 이제 지친 것 같다
발 아래, 말 아래 꽃들이 핀 적이 있는 것 같다
강요된 용서로 길고양이를 품고 집에 온 것 같다
여기로 상류가 흘러오고 저기로 하류의 문이 열리고,
같다, 그림자가 쓰러져야 그림자 속인 것처럼
마음을 버려봐야 마음 안인 것처럼
안과 밖이 없는 것 같다
노래가 응고된 리듬만 들고서 심장에 박힌 것 같다
같은 펴오가는 같은 계절은 없는 것 같다
처음 우는 아이는 처음 우는 게 아닌 것 같다
그 모든 나뭇잎은 우리들의 혓바닥 같다
아픈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나와 화해할 수 없을 것 같다
너와 같아지는 게 두려운 것 같다
"아, 저사람.
내가 저래서 좋아했었어."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언제 들어도 좋은 말 中, 이석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