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이 책은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가 공중보건 의사일 때부터 해온 연구와 고민이 그대로 담겨있다. 김승섭 교수는 연구를 통해서 사회적인 경험이 우리 몸에 어떤 식으로 스며들게 되고, 이런 경험이 스며든 흔적이 어떻게 질병으로 유발되는지 데이터를 통해 분석했다. 책의 목차는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말하지 못한 상처가 남긴 몸의 흔적, 질병을 권하는 직업 환경, 끝내기 위해서 논의를 시작해야 할 지점의 이야기, 사회적 연결망과 공동체에 관한 내용을 키워드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독서를 끝까지 다 마쳤을 때는 책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를 제목과 부제목으로 잘 나타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읽어나갈수록 내가 규정해 두었던 ‘사회적 책임’의 영역이 새롭게 확장되고 재구성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직업 환경 개선에 대한 주제가 있다면, 우리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곤 한다. 이 책에서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의 의무를 다해야 할 뿐 아니라 위험사회에서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공동체의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갖는다.
책에서 제안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가습기 살균제의 사례처럼 해당 제품이 위험하다는 것을 증명할 때 한 명의 피해자가 갖는 힘은 매우 약하다. 비합리적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수 있으며,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품의 위험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실험을 하거나, 충분한 숫자의 피해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김승섭 교수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충분한 근거’를 기다리기보다 ‘불확실성’ 속에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행동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새로운 것을 도입할 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위치의 사람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은 저절로 형성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조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공동체적으로 목소리를 높여가다 보면 점차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과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수시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점검해야 하며 지향하는 목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차별 경험이 마음의 상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몸의 변화와 질병으로까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로운 동시에 아프게 느껴졌다. 책에서는 차별 경험과 질병의 관계를 물고기와 바다의 관계로 비유함으로써 쉽게 풀어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어떤 경험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몸에 새겨진다는 것은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순한 동작을 반복적으로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30분만 지나도 ‘생활의 달인’에 출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짓는 표정이 얼굴에 남아 웃는 사람은 웃는 상이 되고, 인상을 쓰는 사람은 주름을 갖게 된다는 말도 해당될 수 있겠다. 이러한 예시와 김승섭 교수가 한 비유가 갖는 차이점은 ‘사회의 시간’이라는 단어로부터 나뉜다.
차별 경험은 일종의 사회적인 폭력에 해당한다. 사회적 폭력은 구조적인 문제를 동반하기 때문에 분명한 가해자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가해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가해 사실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더욱 넓은 범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담했다고 볼 수 있음에도 피해 사실을 축소시키는 문제로 이어지는 일이 빈번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피해자들은 폭력을 당했던 경험을 밖으로 꺼내지 못해 더 아파하기도 한다. 본인의 상처를 입 밖으로 내지 못해 아파하는 사람들, 심지어는 상처가 있음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상처의 흔적은 발견된다. 몸이 피해자들이 겪었던 ‘사회의 시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가해자를 분명하게 추리기가 어렵다고 해서 가해 사실과 상처받는 사람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몸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