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중국과 일본 등의 동양권, 미국과 유럽 등의 서양권을 통틀어 체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그 이유는 체면에 있어서 개인적 자아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아가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체면이 불통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과연 ‘체면’과 ‘소통’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까?
체면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보호하고 싶어 하는 자기 이미지를 뜻한다. 이것이 의사소통을 가로막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현상은 흔히 ‘권력’ 앞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권위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통치하려 들 것이고, 이는 권위자에게는 사회 최면이 높아지는 일이지만, 이로 인해 권위자를 따르는 이들과의 소통에는 장애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의 체면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불통에 있어 권력을 쥐고 있는 권위자들이 행하는 행동에서 문제점이 제기된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사회적 체면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그들은 위치상 권력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권력이 국민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또한, 그 권력자를 ‘대통령’이라고 가정했을 때, 국민들이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는 일이 결국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권위자를 위한 일방적인 희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체면이 꼭 권위자와 비권위자 간의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 하위권의 영역에서도 일어난다. 우리나라는 주변국들에 비해 능력과 경력, 학력을 중요시 여긴다. 금수저와 흙수저, 우등생과 열등생 등.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간의 구분을 명확하게 그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일까. 사람들은 가진 사람에 속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기 시작하고, 내면에 존재하는 인간의 ‘자존심’이 더 강하게 솟구쳐 ‘체면’이라는 것에 더욱 목매달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체면을 잃고 싶지 않은 인간의 욕구가 강해질수록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족한 면을 숨기기 위해, 체면을 저버리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사람과의 만남을 줄이게 된다. 이는 자연스러운 관계 속 소통의 횟수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관계 속에서 갈등이 발생하였을 경우, 사회적 체면이 높은 사람은 상황을 회피하거나, 더 극단적인 경쟁심을 가지고 강하게 반응한다. 반면, 개인적 체면이 높은 사람은 ‘협동’과 ‘타협’을 통해 상황을 원만하게 해결하고자 한다.
다른 동양권 및 서양권의 나라들처럼 사회적 자아에 얽매이지 말고 개인적 자아로서, 내가 만족하면 그만인, 내가 나의 능력과 가능성을 인정하면 그만인 삶을 살아보는 게 어떨까. 남의 시선에 의식하며 사는 인생에는 결국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모든 이들이 조금 더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