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거리 할 나무를 찾던 중에 사자의 발자국을 추적하는 사냥꾼을 발견했다. 인기척을 느낀 사냥꾼이 근처에서 사자 발자국을 본 일이 있느냐 물었고, 나무꾼은 사자가 사는 동굴을 안다고 답했다. 동굴 입구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나무꾼의 친절에 사냥꾼은 사색이 되어 도망친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어리둥절하다. 줄행랑치며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나는 사자의 발자국을 찾으려던 거지, 사자를 잡으려던 마음은 일절 없단 말이오!”
‘사자를 쫓는 겁쟁이 사냥꾼’ 이솝우화 속 나무꾼은 사냥꾼의 반응에 당황했더라도 곧 큰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사자가 무서워 뒤꽁무니를 빼는 사냥꾼의 모습이라니 상상만 해도 우스운 꼴이 아닌가. 하루치 땔감을 채우지 못했어도 나무꾼은 싱글벙글 산에서 내려와 온 동네에 소문이 퍼질 정도로 떠들어댔을 것이다. 나무꾼은 이 일화를 죽을 때까지 안줏거리 삼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희한한 일이다.
필자는 이를 조금 다르게 분석해 보려 한다. 이야기 속에서 사냥꾼의 ‘잘못’은 무엇이었는가. 뭐 때문에 삽시간에 소문이 온 동네로 퍼지리라 예측하고, 나무꾼의 평생 안줏거리가 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사냥꾼은 본래 사냥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인데 제 본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판받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즉, 사냥꾼이라는 직업과 그가 하는 행동 사이의 ‘불일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불일치를 이용한다면 사냥꾼의 소문이 옆 나라까지 퍼지게 만들 수 있다. 바로 이야기 속의 사냥꾼은 ‘사냥꾼인 척하는 나무꾼’이었다는 요소를 추가하면 된다. 이야기해 주던 나무꾼이 미처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아니 글쎄, 사냥꾼이 아니라 나무꾼이었대!”라고 외치면 자연스레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따르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
마땅히 따라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을 때 비웃음이 되는 사냥꾼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직업과 수행 간의 불일치, 계층과 소비 간의 불일치, 집단과 문화 간의 불일치 등 다양한 범위에서 적용된다. 명품을 두른 모습이 화제가 되어 ‘구찌가 만 원’, ‘연예인 병’이라는 호칭이 붙었던 래퍼 비와이, 기존 10~20대의 아이돌 팬층보다 나이가 많아 조롱당하는 ‘줌마 팬’처럼 쉽게 사례들을 떠올릴 수 있다. 앞의 두 사례를 단계적으로 살펴보자.
첫 번째, 래퍼 비와이가 착용한 명품 브랜드 상품을 만 원짜리 같다거나 비와이가 연예인 병에 걸린 것 같다는 조롱이 있었다. 이 말의 뜻은 명품이라는 기호에 비와이라는 사람이 부합하지 않기에 ‘명품의 느낌’을 내지 못했다는 뜻이 담겨있다. 즉, 연예인처럼 명품의 가치에 걸맞은 사람만이 명품을 두를 수 있으며, 이런 경우가 아니면 비웃음을 사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보통 아이돌 팬들은 10~20대일 것이라 보는 경향들이 있다. 이런 이유로 아이돌 팬덤 외부로부터 어리다는 공격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 반대로 나이가 많은 팬들은 팬덤 내외부를 막론하고 공격받게 된다. 기존 10~20대일 것이라 여겨지는 팬층보다 나이대가 있는 팬들은 ‘줌마+팬’이라는 이름으로 조롱당하게 된다. 이들이 공격받는 이유는 다 가지각색이지만, ‘줌마 팬’이라는 호칭으로 묶여 정체성 자체를 함께 공격받는다. 이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행위 주체를 10대에서 20대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줌마 팬’을 유난으로 여김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두 사례처럼 한국은 직업, 집단, 계층, 생각, 행동, 소비, 문화 등 개인과 집단이 행할 수 있는 것들을 재단해두고, 상호 불일치하면 비웃거나 조롱하는 사회적 풍토가 존재한다. 최근 개그맨 지석진, 김수용이 소위 MZ 세대의 문화라고 불리는 놀이를 방송을 통해 체험했다. 해당 방송은 관찰형 예능으로 미리 촬영된 영상을 패널들과 함께 시청한 뒤 코멘트를 한다. 전혀 이해가 안 된다는 패널들의 반응과 과장된 몸짓으로 둘을 조롱하는 모습은 ‘불일치’를 예능 소재, 웃음거리 삼았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일치는 ‘잘못’인가? 나이대에 상관없이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 잘못이냐고 묻는다면 모두 당연히 잘못된 것이 아니며, 시대착오적인 질문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보인 모습은 달랐다. 어쩌면 우리가 ‘불일치’로부터 느끼는 불쾌가 그들을 향한 조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사회적 풍토를 더 견고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사자를 쫓는 겁쟁이 사냥꾼’ 이야기 속으로 돌아가보자. 사냥꾼의 ‘잘못’은 무엇이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