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로 알아보는 플라톤 철학
깔끔하게 꾸며진 세트장. 의자 두 개와 테이블 하나가 간소하게 준비되어 있다. 조명이 쏟아지는 세트장 가운데 두 명이 마주 보고 앉아있다. 긴장이 흐르는 가운데 들어오는 큐 싸인. mc가 준비한 멘트로 방송의 시작을 알린다.
나: 철학을 알아보다! 안녕하세요 고품격 교양 방송의 서양 지성사와 철학>의 mc를 맡은 나수아입니다. 오늘은 또 스페셜 한 게스트를 모셔봤는데요. 이분하면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근대 서양철학이란 플라톤 철학의 주석일 뿐이다”의 주인공, 플라톤 씨를 모셨습니다. 다들 박수로 맞아주세요. 어서오세요! 플라톤 씨 시청하는 우리 시청자님들을 위한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플라톤: 안녕하십니까. 그리스의 철학가인 플라톤입니다.
나: 플라톤 씨! 정말 많이 모셔보고 싶었어요. 철학을 배우며 정말 여기저기서 이름이 들리시더라고요.
플라톤: 제가 후대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곤 들었습니다.
나: 네, 플라톤 씨가 저술한 책 <국가>와 <향연> 등은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필독 도서이죠. 또 현대 대학의 원형인 아카데메이아를 세우시고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위대한 철학자의 스승으로서도 유명하시지요.
플라톤: 과분하군요.
나: 오늘은 그 많고 많은 플라톤 씨의 업적 중에서도 플라톤 씨의 아르케, “이데아”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자 합니다. 먼저 사전에 저희 시청자들이 질문을 모집했었는데요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응모해 주셨어요. 그중에서도 흥미로운 질문 몇 가지만 추려서 오늘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플라톤: 저도 기대가 큽니다.
나: 먼저 첫 번째 질문입니다. 서울에 사시는 김진수 씨가 질문 주셨어요. 플라톤 씨는 이데아가 변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셨죠. 예를 들어 법과 아름다움이란 이데아가 있다고 할 때 저는 이 법과 아름다움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간통법이 폐지되면서 논란이었죠. 불륜이 처벌받다 처벌받지 않게 된 것이니까요. 또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을 보면 고대에는 풍만한 체형의 여성이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플라톤: 그렇군요.
나: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이데아가 변하지 않는다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다 똑같이 나쁜 법이다 혹은 풍만한 여성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플라톤: 하하 아닙니다. 이데아란 법과 아름다움이라는 개념 자체입니다. 이들은 변하지 않고 존재하죠. 법과 아름다움의 설계도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저희가 이해하는 법과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하지만, 원래의 법과 아름다움의 설계도인 법과 아름다움이란 이데아는 변하지 않는 것이죠.
나: ’현실 세계는 변하지만, 이데아는 변하지 않는다‘라는 거죠?
플라톤: 그렇습니다.
나: 두 번째 질문은 대구에 사시는 박수현 씨가 주셨어요. 이데아에 개념에 기준이란 것도 포함이 돼 있고 우리는 그것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한다고 했는데 왜 사람마다 판단하게 되는 정도가 다른 건가요? 예를 들어서 나는 이 꽃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끼나 다른 사람은 그럭저럭 괜찮은 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건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요? 이데아란 개념이 변하지 않고 그걸 기준으로 모두가 판단한다면 판단이 달라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질문 주셨습니다.
플라톤: 이 질문은 위에 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군요. 아무래도 좀 더 심화해서 설명해야겠습니다. 개념은 최고로 좋은 것 이란 의미도 들어있다고 했죠? 먼저 이 펜을 보세요. mc 님이 앉아있는 곳에서 보는 펜과 제 쪽에서 보는 펜은 과연 같은 펜일까요? 사물의 모습은 보는 사람마다 여러 이유로 달라집니다. 이에 대해 제가 과거에 들었었던 비유로 설명할 수 있겠네요.
나: 무엇인가요?
플라톤: <국가>에서 서술했던 비유입니다. “여기에 지하 동굴이 있다. 동굴 속에는 죄수가 갇혀 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두 팔과 다리가 묶인 채로 동굴 벽만 보고 산다. 목도 결박당하여 머리를 좌우로도 뒤로도 돌릴 수가 없다. 죄수의 등 뒤 위쪽에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 죄수는 횃불에 비춘 자신의 그림자만을 보고 산다.”
나: 아! 들어본 것 같습니다. 분명 거기에 비유된 죄수가 바로 저 희고 동굴이 현실 세계였죠?
플라톤: 그렇습니다. 그 뒤는 이렇죠. “죄수와 횃불 사이에는 무대 높이의 회랑이 동굴을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다. 이제 이 회랑 뒤에서 누군가가 인형극 놀이를 한다고 상상하자. 돌이나 나무로 만든 동물 모형, 사람 모형을 담장 위로 들고 지나가는 것이다. 죄수는 횃불에 의해 투영되는 모형의 그림자만을 볼 뿐, 실재의 모형을 본 적이 없지. 인형극을 연출하는 사람들이 대사를 읽을 경우, 죄수는 모형의 그림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인식할 거야. 이제 죄수의 몸을 묶고 있는 사슬을 풀어주자. 모형을 죄수에게 보여주자. 당신이 보아온 동굴 벽의 이미지는 모형의 그림자였음을 설명해 주자. 죄수는 악을 쓸 것이다. 평생 그림자만 보아온 죄수는 그림자를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것으로 고집할 거야.”
나: 이 동굴의 우화는 이데아에 대한 설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화에서 모형이 바로 이데아이고 모형의 그림자가 저희가 현실에서 보는 것이라는 거죠? 현실의 모든 것은 원형인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플라톤: 제대로 이해한 거 같군요. 여기서 만약 죄수가 둘이라고 해봅시다. 둘이 묶여있던 어느 날 동굴로 사자가 걸어들어옵니다. 죄수 하나는 뒤로 다가온 그림자를 보고선 사자라는 걸 바로 알아채곤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죄수는 그 사자 그림자를 보고선 고양이라 착각하고 맙니다. 이는 과연 사자의 문제일까요?
나: 받아들이는 죄수들의 착각 때문이죠.
플라톤: 맞습니다. 이데아가 아무리 올바르고 좋음을 추구하더라도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죄수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자는 사자 그림자가 되기도 하고 고양이의 그림자가 되기도 하죠. 바로 여기서 우리가 철학하고 사색해야 할 이유가 생겨납니다.
나: 아, 저희 방송의 자문이신 이용훈 교수님께서 저번 시간에 강의하신 거네요. 저희 방송을 즐겨 보신 시청자분들이라면 모두 알고 계실 거예요.
플라톤: 무엇이죠?
나: 원리의 세계인 이데아들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이죠?
플라톤: 맞아요. 제대로 알고 있군요. 이데아의 세상은 사색과 철학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성입니다.
나: 그렇다면 동물들은 이데아의 세상에 도달하지 못하는 건가요? 동물들은 이성이 없고, 사색하거나 철학 할 수 없으니까요. 인간들만 이데아의 세상에 도달할 수 있나요?
플라톤: 예리한 질문이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인간의 이데아에 관해 설명해야겠군요. 먼저 이데아란 개념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탁월함이기도 합니다. 탁월함의 뜻에 대해선 알고 있겠죠?
나: 어떤 능력을 잘 발휘하는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플라톤: 맞습니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이데아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탁월함입니다.
나: 어렵군요.
플라톤: 간단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아까 mc님이 말씀하신 것이죠. 그것은 바로 생각과 사색입니다. 즉 이성이죠. 따라서 생각과 사색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이성의 영역인 이데아의 세상은 이성이 있고 철학 할 수 있는 인간만이 도달할 수 있죠.
나: 아, 이데아의 도달 과정에 대해서도 질문이 와 있습니다. 포항에 사는 이지현 씨가 주셨네요. 플라톤 씨가 설명한 아르케가 어떻게 현실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설명이 너무 신화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상기할 수 있다는 것에 근거가 그곳에 살았기 때문이라면 왜 우리는 그곳에서 살았다는 건 상기할 수 없는가요? 저희가 이데아의 세계에 살았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믿기 어렵습니다. 또 도달 과정에 대해 플라톤 씨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비판했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플라톤: 그에 대해선 한번 상상을 해보는 것입니다. 사색하고 생각하며 추론하는 것으로 저희는 이데아에 도달할 수 있게 되죠. 저는 인간의 이성이 매우 순수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 세계로 내려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이데아를 직관할 수 없으며 이데아를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상기를 통해 이데아를 기억해 내고 진리를 추구하게 되죠.
나: 진리요? 그러고 보면 플라톤 씨는 항상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거 같습니다. 진리를 발견하신 철학자로 유명하시기도 하고요
플라톤: 그렇습니다
나: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에 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철학이 밥 먹여주냐 철학과 나오면 취업이 안 된다는 소리가 쉽게 나올 정도로 안타깝게도 현대의 시대에 철학은 선호되지 않는 분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여전히 철학하고 진리를 찾아야 하는 걸 가요?
플라톤: 먼저 우리는 위의 질의응답을 통해 이데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었죠. 이데아들은 모든 개념의 설계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준점이 되는 이데아들의 설계도 또한 있다고 가정할 수 있겠죠. 이것이 바로 이데아들의 이데아인 좋음의 이데아, 진리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된다면 진리를 통해 수많은 이데아들을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본인의 행동과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수많은 개념들을 탐구하며 좋음과 나쁨을 판단할 수 있게 되죠. 즉 우리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철학은 이 지혜를 탐구하는 학문이죠.
나: 정리하자면 진리를 찾기 위해선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플라톤: 그렇지요. 만약 이데아를 보고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 주체의 정신 상태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이데아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습니다. 위에 호랑이를 보고도 고양이라 생각했던 죄수처럼 어리석어지는 것이죠. 또한 아무리 좋은 걸 봐도 좋은 걸 좋은 거라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이데아를 지식이라 한다면 그를 알아보는 인간 주체의 정신 능력 또한 탁월해져야 한다는 거죠. 이 탁월한 정신 능력이 바로 철학입니다. 이데아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능력으로 봐야 하기 때문인데 이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게 철학하고 사색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죠. 이데아와 철학 하는 주체가 일치했을 때 우리는 드디어 좋음의 이데아인 진리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나: 결국 철학은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건가요?
플라톤: 하하, MC 님은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나: 네, 저는 플라톤 씨와 이야기 나누면서 그렇게 느꼈어요. 인간에게 이성과 사색하는 능력이 있는 이상 동물과 기계와는 다르게 살아야 하는 거 같아요.
플라톤: 그렇죠. 만약 진리가 없다면 학문과 윤리적 행위를 할 수 없게 될 겁니다. 그뿐일까요? 문명과 문화가 사라지게 되고 인간은 동물이나 기계처럼 살 게 될 겁니다.
나: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세상의 원리가 무엇인가부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인 거 같아요.
플라톤: 저도 유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철학을 알아보다! <서양 지성사와 철학>의 mc 나수아,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