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의 문턱, 높을수록 청소년의 자살률도 높아진다.’

 

“청소년의 정신과 치료를 국가에서 지원해 주세요.”

 

2019년 12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청소년의 정신과 치료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의 본문에서는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임을 지적하며, 청소년들이 더욱 정신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함을 촉구했다. 이 청원은 5,728명의 동의를 얻어, 청소년이 자유롭게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없음이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방증했다. 어린 학생들이 먼저 나서서 이 문제에 대해 간절히 요구하는 것은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를 어른들과 국가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반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심지어 10대 청소년 자살률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자살의 원인에 대해선 다양하게 분석되고 있다.

▲ 임범석

 

학교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40.7%, 가족 간의 갈등 22.1%, 선후배나 또래와의 갈등 8.3%, 경제적인 어려움 1.7%, 기타가 27.3% 등 청소년이 다양한 요인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것이 나타났다. 특히 이들의 자살 생각률과 계획률, 시도율 모두 다른 연령대에 비해 3~4배나 높아 자살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차단할 장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1일 발간한 ‘2020 자살 예방 백서’에 따르면 2018년 청소년 자살자 수는 105명이 증가한 827명으로 전년 대비 14.5% 늘어났다. 인구 10만 명당 비율로 본 자살률은 1.4명이 증가한 9.1명(17.8%↑)을 기록했다.

 

 

■ ‘사회적으로 낙인찍힐까 정신과 진료가 두려운 청소년들’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어느 정도일까?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 (2016.11)>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2007년 조사한 ‘정신질환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 76.6%의 응답자가 ‘정신질환자들이 일반인보다 위험한 편’이라고 응답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최근도 실질적으로 나아지지 않았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성인들에게도 문제가 되지만 비교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정도가 높고, 사회적 범위가 좁은 시기인 청소년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 임범석

 

청소년기의 정신질환은 성인이 되어 만성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보건복지부와 서울 삼성병원이 2016년도 공동 조사한 정신질환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중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은 약 1,000만 명이다. 평생 유병률이 25.4%이고, 1년 유병률은 11.9%인 470만 명으로 조사되었지만, 전문가와 상담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은 9.6%에 불과했다. 또한, 정신과 치료를 진행한 수도 22.2% 수준에 그쳤다. 정신질환은 간단한 상담과 치료를 통해 더욱 나아질 수 있지만, 사람들은 정신과에 발길을 내딛기를 꺼린다.

 

국립 정신건강센터에서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약 1,200명에서 1,500명의 패널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 및 태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70% 정도가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고, 치료가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위험한 편이다.’라는 항목에 60%가 응답했다. ‘정신질환자 이용 시설이 우리 동네에 들어와도 받아들일 수 있다’라는 질문에도 긍정적으로 응답한 수치가 35% 정도에만 그쳤다. 즉,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들을 포용하지는 못한다는 결과인 셈이다.

 

정신질환자를 배척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미디어가 정신질환을 부정적으로 비추기 때문이다. 미디어와 언론에서는 대개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처럼 그려내고, 그들이 성격 면에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나타낸다. <정신질환의 낙인과 귀인에 대한 언론 보도 분석> 논문에 의하면 2017년 기준으로 10년간 5대 주요 일간지에서 발간된 정신질환 관련 기사 10,227개 중 41.1%가 정신질환에 대해 부정적인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도했다. 한국심리학회지에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2007년도에 발간된 정신질환 관련 기사 41건 중 51.2%는 정신질환자를 위험하거나 무능력한 존재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렇듯 오랜 세월 동안 언론과 미디어를 통한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정신질환자가 위험하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아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 청소년들의 실상은 안중에도 없는 정부의 '탁상정책’

 

청소년 정신질환은 연령에 따라 병명과 증상이 다양하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운영하는 청소년 관련 정책은 '보건복지부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증진 사업'과 '국립정신건강 센터 학교 정신건강 사업' 2가지에 불과하다. 청소년 정신질환을 세부적이고, 다양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이 중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증진 사업은 전국 정신건강 복지센터 243곳 중 130곳만 참여하고 있다.

 

청소년의 정신건강 서비스는 네 단계를 거친다. 교육부에서 주관하는 '학생 정서, 행동 특성 검사'를 통해 상담이 필요한 청소년을 발견하고, 위클래스에서 면담을 진행한다. 심화된 상담이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위센터, 정신건강 복지센터 혹은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등 2차 전문기관에 연계하고, 더 전문적 상담과 치료가 필요할 경우는 병·의원으로 연계된다.

 

하지만 기관별로 상담 지침이 다르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한국의 삼원화(교육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된 청소년 정신건강 서비스 체계는 문제가 된다. 이로 인해 학생 상담 연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서미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연구부장은 “현실적으로 삼원화된 구조를 통합 운영하기 어렵다면, 치료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높이기 위해 학교에서 위험 청소년 한 명을 발견했을 때 전문기관의 상담과 치료까지 전체적 관리를 총괄할 컨트롤타워 같은 역할이라도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 보건복지부

▲ 정신건강 종합 대책을 설명하기위해 제작된 인포그래픽.

정부는 정신건강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초기에 정신건강 문제를 발견하고 전문적 상담과 의학 치료를 받으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편적인 것에 불과하다. 정부가 사회 구조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법은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소득 불평등, 고용불안, 취약한 복지제도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에게 정신과 치료의 문턱을 낮추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신건강 종합 대책에 앞서, 국민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우선으로 보인다. 노만희 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 회장은 “정부 정책은 그럴듯하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별로 없다”라며 “정신 의료시스템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나 예산 등이 담보가 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부족한 시설도 문제로 나타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정신 재활 시설은 총 348개소인데 반해, 아동·청소년 정신 재활 시설은 전국에 12개소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모두 서울지역에 밀집해 있고 그 외 지역에는 전무한 상황이다. 복지부는 2016년 '정신건강 종합 대책'을 통해 성인뿐 아니라 아동‧청소년 대상 정신질환 관리, 학업 지원 및 사회 복귀를 위한 시설 설치‧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으나 이후 추가로 확충된 아동·청소년 정신 재활 시설은 단 1개소에 불과했다.

 

 

■ ‘독일과 영국의 청소년 정신건강 서비스 체계’

 

- 독일

한국은 청소년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한 데에 반해, 독일은 아동‧청소년지원법 제69조에 따라, 모든 지자체와 광역시가 청소년 청을 설치해야 한다. ▲ 청소년 청은 하나의 자치단체 기구이며, 청소년복지를 위한 사회사업 서비스 행정기관이다. 청소년지원 위원회와 청소년 청 행정기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동과 청소년의 심신을 위협하는 것을 제거하고 예방하기 위해 부모의 자녀 양육에 관한 국가적 감시행정을 담당한다. 청소년 청 내에는 청소년 전문 공무원으로 구성된 사무국이 있으며, 청소년지원 위원회에서 심의 의결된 사항을 집행한다. 청소년지원위원회는 청소년청의 상위의결기구이며, 청소년지원 및 복지를 위한 계획이나 지원 단체의 재정적 문제에 대해 독자적 책임을 진다.

 

또한, 독일은 모든 학교에 상담사가 존재한다. 학교상담사가 초기 면접 상담 후, 전문적 상담이 필요할 경우는 다양한 영역의 상담사들을 연계해주는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도 청소년의 정신건강 서비스가 네 단계를 거치며 더 전문적 상담을 받을 수 있게 연계하지만, 독일에서는 정신분석, 가족 상담, 행동 치료, 인지 치료, 게슈탈트 상담, 학습 상담 등 다양한 영역으로 상담사를 연계시켜 준다.

▲ 청소년청 : 연방정부법률에 따라 아동, 청소년복지를 관찰하는 지역의 공공실천기관

 

- 영국

영국은 정신 보건 서비스 사업의 기본 틀과 방침, 제도적 장치의 지원은 중앙정부에서 담당하고, 정책 운영 관리는 지방 자치 정부가 하는 형태이다. 기본적인 중앙정부의 정책은 지방 자치 정부가 공통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위기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은 국가 주요 정책 사업으로서 모든 지방정부가 실시하고 있다. 지역의 기관 간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청소년지원 사업을 시행한다. 기관이 분리되어 기관별로 상담 지침이 다르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한국과 달리 연계 협력을 통해 효율성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청소년복지를 담당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통합지원 시스템은 ‘Connexions’다. 전국의 47개의 지역 단위에서 각종 서비스의 전달을 담당하는 허브 기관(의료계의 중심지역 역할을 하는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각 지역의 기관들은 서로 협력하여 청소년과 부모를 돕고 지역 사회에 이바지한다.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PA(Personal Adviser)도 전문적인 자격을 요구한다. 대학 졸업자이거나, 국가 직업 자격(National Vocational Qualification:NVQ) 수준 가운데 4급 정도의 자격을 요구한다. 이들은 도움이 필요한 위기 청소년에게 상담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 연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한국은 센터 직원의 고용 안정성, 전문적 경력을 보장할 수 있는 근속 기간 등이 확보되지 않았다. 정신건강 복지센터가 맡은 역할과 기능에 비해 인력이 부족하고, 직원이 부담해야 할 업무가 가중되면서 근속연수가 짧고(평균 3.1년), 비정규직도 많다. 경험 있고, 안정적인 정신 보건 전문가를 채용하고, 배출하는 데 어려움을 보인다.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중요 인식의 차이도 보인다. 영국 보건부는 올해 1월 정신건강 서비스 중요도를 재평가해 10개년 계획을 세웠다. 정신건강 서비스를 ‘최우선 순위’로 두고, 2024년까지 정신건강 서비스에 23억 파운드의 예산을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앞으로 영국은 아동 정신건강과 관련해 2025년까지 모든 학교에 정신건강 관련 관리자를 지명할 계획이다. 2020년 9월까지 모든 학교에서 학생에게 필수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교육을 해야 한다. 학교마다 최소 1명의 정신건강 관련 훈련을 받은 직원 배치한다. 아동·청소년 정신건강·복지 평가도구 등 학교 정신건강 자원 개선을 개선하고, 학교 평가 시 교육의 성과뿐 아니라 학교가 아동ㆍ청소년 정신건강 지원실태도 평가하는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

 

 

■ ‘청소년이 걱정 없이 자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예전보다 지원이나 서비스 측에서 나아지기는 했지만, 현재 정신건강에 대한 정책과 서비스는 여전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정신질환이 발병한 후의 해결책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치료와 회복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정신질환이 발병하기 이전의 원인이 되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입시와 취업 경쟁 시대에 내몰린 아이들에게 우선순위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야 한다. 병에 걸린 사람들이 스스로 그 병을 고칠 수 있도록 장려해 주어야 한다. 또한, 병을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 교수는 "한국인들은 감정 표출에 익숙지 않고,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문화의 영향이 크지요."라며, 정신질환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을 문제 삼았다. 이러한 영향이 근원이 되어 청소년들이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것에 제약을 준다. 사회와 가족 구성원들이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정신적 독립을 장려해 주는 것이야말로 정신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참고자료>

중앙자살예방센터-2018 자살예방백서 

 한겨레21- "부모동의 없어도 자해 청소년 치료 가능해야" 

마인드 포스트- 정신질환 절반이 청소년기에 발생하는데... 국가대책 '지지부진'

 

By 김기현 김은철 박정현 서경선 임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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