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20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 리버풀 vs 바르셀로나 '안필드의 기적' 하이라이트

2018~2020

알리송 베케르가 지키는 골문은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 고메스와 버질 반 다이크가 버틴 중앙 수비진은 고메스가 부상으로 이탈하기 전까지 통계상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의 듀오였다. 트렌트 알렉산더 아놀드, 앤디 로버트슨은 엄청난 킥과 패스로 리버풀에게 추가적인 공격 방식을 제공했다. 미드필더진은 투박하지만 단단했고, 공격진은 더 이상 말하기도 입 아픈 수준이 됐다.

프리미어리그 성적은 30승 7무 1패였다. 맨체스터 시티에게 당한 1패 때문에 무패 우승에 실패했고, 시즌 중반 비교적 약팀을 상대로 거둔 몇 번의 무승부가 뼈아팠다. 이렇게 역대급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우승 트로피는 맨시티의 차지였다. 하지만 이때까지 맨시티는 몰랐다. 이 순위표가 다음 시즌 어떤 괴물을 만들어낼지 말이다.

UEFA 챔피언스리그 도전기는 쉽지 않았다.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놓였던 리버풀은 SSC 나폴리를 물리치고 가까스로 16강행 기차에 탑승했다. 이후 바이에른 뮌헨-포르투를 차례로 꺾었고, 준결승에 오른 리버풀은 리오넬 메시가 버티고 있는 바르셀로나를 만났다. 명실상부 21세기 최고의 팀인 만큼 '사실상 결승전'이라는 평가를 받은 경기였다.

하지만 캄프 누 원정을 떠난 리버풀은 0-3으로 완패했다. 경기력 측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상황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은 팀이 승리했다. 리버풀은 안필드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 그나마 3-0 승리를 거둬야 연장전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상황이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하메드 살라와 호베르투 피르미누까지 부상으로 이탈했다.

▲ ⓒ데일리 익스프레스

'NEVER GIVE UP'

준결승 2차전이 열리던 날, 살라는 'NEVER GIVE UP'이라고 쓰여진 검은색 옷을 입고 경기장에 등장했다. 레인저스의 든든한 감독으로 성장한 스티븐 제라드도 경기장을 찾았다. 리버풀은 살라, 피르미누를 대신해 세르단 샤키리, 디보크 오리기를 선발 투입했다.

안필드의 분위기는 0-3으로 뒤지고 있는 팀이라기에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경기 시작부터 분위기를 탄 리버풀은 조르디 알바의 실책을 틈타 디보크 오리기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1-0으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기적을 꿈꾸던 리버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출발이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메시, 루이스 수아레스, 필리페 쿠티뉴로 구성된 삼각편대는 시종일관 리버풀 수비진을 괴롭혔다. 다행히도 리버풀의 골문에는 알리송이 서있었다. 그들의 모든 슈팅을 막아냈고, 조엘 마팁과 반 다이크는 신들린듯한 수비력을 보여줬다.

1-0, 리버풀은 그대로 전반전을 마쳤다. 다행히도 주도권은 리버풀이 잡고 있었지만 로버트슨이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좌측면에서 많은 공격 기회를 창출했던 로버트슨의 이탈은 리버풀에게 있어 큰 손해였다. 어쩔 수 없이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제임스 밀너가 왼쪽 수비수로 자리를 옮겼고, 그 자리에 조르지니오 바이날둠이 교체 투입됐다.

▲ ⓒ포포투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조르지니오 바이날둠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경기를 중계하던 모 위원의 코멘트다. 사실 바이날둠이 경기장에 들어서던 순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별 생각이 없었다. 로버트슨의 이탈이 걱정될 뿐이었다. 하지만 바이날둠은 교체 투입 직후 멀티골을 터뜨리며 경기를 동률로 만들었다. 후반 9분 알렉산더 아놀드의 자로 잰듯한 크로스를 깔끔하게 골문으로 차 넣었고, 2분 후 샤키리의 크로스를 정확한 타점의 헤더로 연결시켰다.

그리고 후반 34분, 비로소 기적이 완성됐다. 코너킥을 준비하던 알렉산더 아놀드가 샤키리와 키커를 변경하려던 찰나 상대 수비진으로부터 자유롭게 위치한 오리기를 확인했고, 빠르게 돌아와 볼을 오리기에게 보냈다. 오리기의 슈팅은 당연하게도 골망을 깔끔하게 갈랐다.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눈을 맞춘 둘은 환상의 호흡을 맞췄다.

준결승 2차전 결과는 4-0. 총합 4-3으로 리버풀의 결승 진출이었다. 메시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경기장을 응시했고, 바르셀로나의 모든 선수들이 지쳐 쓰러졌다. 리버풀 선수들은 안필드의 팬들과 함께 경기장에 남아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을 열창했다. 부주장 밀너는 눈물을 훔치기까지 했다.

▲ ⓒ스포츠바이블

그렇게 결승에 오른 리버풀은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첫 결승에 진출한 토트넘 홋스퍼를 상대했다. 경기 시작 직후 살라의 페널티킥 골과 후반전 오리기의 쐐기골에 힘입어 리버풀은 14년 만에 여섯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완성했다. 8년 전 리버풀 최악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던 조던 헨더슨은 역사에 남을 위대한 주장이 되어 빅 이어를 들어 올렸다.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 리버풀은 승승장구했다. 아드리안, 셉 반 덴 베르흐 정도를 제외하면 마땅한 영입은 없었지만 UEFA 슈퍼컵을 우승했고, FIFA 클럽 월드컵에서 구단 역사상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30년 만에 리그 우승도 근접했다. 지난 시즌 맨시티가 낳은 괴물 리버풀은 코로나19로 리그가 중단된 현 시점 29경기 27승 1무 1패 승점 82로 2위 맨시티와 승점 25점 차를 유지하고 있다. 9경기나 남았는데 2경기만 승리해도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다.

▲ ⓒ리버풀 공식 홈페이지

이제 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케니 달글리시, 라파엘 베니테스. 리버풀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만든 인물들만 들어갈 수 있는 배너에는 클롭의 얼굴도 생겼다. 더불어 지난 6월 3일, 리버풀은 창단 128주년을 맞았다. 128년 동안 47개의 우승 트로피, 위대한 선수들,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붉은 제국까지. 리버풀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팀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되었던 리그는 6월 중순을 시작으로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온다. 비록 무관중 경기지만 리버풀은 30년 만의 리그 우승을 향해 다시 한번 나아갈 예정이다. 오는 22일(월) 오전 3시(한국시간) 구디슨 파크에서 열리는 에버튼과의 머지사이드 더비를 통해 리버풀은 새로운 일정을 시작한다.

리버풀의 붉은 제국은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 ⓒ디스 이즈 안필드

The end.

"만약 우리가 지거나 비기고 있을 때 우리를 응원할 수 없다면, 우리가 이기고 있을 때도 응원하지 마라." - 빌 샹클리(Bill Shank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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