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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뚜렷한 모습보다 흐릿한 모습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게 된다.

 

어릴 적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방학이 되면 항상 외가댁에 맡겨졌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마을버스를 갈아타면 봉천동 국회 단지 꼭대기에 외가댁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항상 터미널로 마중을 나오셨고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으셔서 터미널까지 마중은 힘드셨지만 항상 마을버스 정거장까지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셔서 어두운 정거장에  혼자 앉아계셨다.

 

“총각 얼른 일어나 밥 무라”

 

매일 아침 알람처럼 할머니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 밥상에 앉아 억지로 밥을 먹었다. 왜 그랬는지 그냥 밥이 싫었다. 반 이상을 남기고 주방으로 밥상을 내놓으면 할머니가 주섬주섬 안방에서 나오셔서 내가 남긴 밥에 물을 말아 드셨다.

 

“할머니 더럽게 왜 남긴 걸 먹어”

“내 새끼 먹던 건 괜찮아”

 

그렇게 밥에 물을 말아 드시고 식사를 마치신 할머니는 항상 귤을 강판에 갈아 주셨다. 귤껍질 흰 부분까지 일일이 다 떼어내면서 갈아 주시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입이 짧았던 나는 또 반을 먹고 싱크대 위에 남은 주스를 올려놓았고 할머니는 남은 주스를 드시곤 하셨다.

 

점심때가 되면 국수랑 라면을 즐겨 해주셨는데 항상 너무 오래 삶아주셔서 면은 퉁퉁 불어 있었고 그때마다 한입만 먹고 안 먹는다고 투정을 부리곤 했다.

 

저녁이 되면 할아버지가 복덕방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셨고 집에 오시는 길에 항상 갖은 군것질거리를 사 오시면 할머니가 차려주신 저녁 대신 과자와 초콜릿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늦은 저녁이 되어 화장실에 가다 주방을 문득 보면 주방의 작은 불하나 켜놓으시고 혼자 남은 저녁으로 식사를 하고 계시던 할머니 모습이 흐릿하게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될 무렵 당뇨가 있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현재의 내 기억 속엔 할머니가 해주셨던 음식들과 항상 혼자 식사를 하시던 모습만을 희미하게 기억한다.

혹시 불빛에 깰까 작은 주방 불하나 켜놓고 식사를 하시던 흐릿한 모습이 어쩌면 어떠한 뚜렷한 모습보다 선명하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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