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텔레그래프

1985~2004

리버풀 창단 100주년을 7년여 앞둔 1985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일어난 헤이젤 참사로 인해 잉글랜드 팀들은 향후 5년 동안 유럽 대항전 출전 금지라는 처벌을 받게 됐다. 사건의 중심에 서있었던 리버풀에는 2년을 추가해 7년의 출전 금지령이 떨어졌다. 이 사건 이후 조 페이건(Joe Fagan) 감독이 은퇴했고, 케니 달글리시(Kenny Dalglish)가 선수 겸 감독으로 부임했다.

달글리시는 부임 직후부터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선수로서도 세계 최고였던 그는 감독으로서도 세계 최고가 됐다. 부임 첫 시즌부터 디비전 1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는가 하면 FA컵에서도 라이벌 에버튼을 꺾고 왕좌에 올랐다.

다다음 시즌이었던 1987-88시즌, 존 반스(John Barnes)가 합류한 리버풀은 17번째 디비전 1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리그 우승 경쟁에 있어 적수는 없는 듯했다. 하지만 1년 후, 헤이젤 참사에 이은 또 다른 사건이 리버풀 지역에 비통함을 가져다주는데 이 사건이 바로 '힐스브러 참사'였다.

▲ ⓒ데일리 익스프레스

1989년 4월 15일,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는 힐스브러 스타디움에서 FA컵 4강전을 치렀다. 많은 인파가 몰린 이날 경기는 경기장 측 실수로 약 1,600명 정원의 입석에 약 3,000명이라는 숫자의 관중이 입장했고, 사람들이 급격히 몰린 철망이 무너지면서 96명의 리버풀 팬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리버풀은 해당 시즌 FA컵에서 우승하고, 그 다음 시즌에도 디비전 1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지만 4년 사이 일어난 참사 두 번의 여파는 구단에게 너무나 컸다. 이후 트라우마를 겪는 일부 선수의 이탈 그리고 달글리시가 1991년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사임함으로써 리버풀의 암흑기가 시작되기에 이른다.

이후 로니 모란(Ronnie Moran) 감독이 감독대행 역할을 수행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고, 1991년 리버풀 레전드 그레이엄 수네스(Graeme Souness) 감독이 부임하지만 단 1회의 FA컵 우승을 제외하고는 리그에서 줄곧 부진한다. 이 과정에서 빌 샹클리(Bill Shankly) 감독이 만든 부트룸까지 없어지면서 영광의 흔적은 점차 희미해져갔다.

리버풀에게 희망이란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나마 로비 파울러라는 걸출한 유망주 공격수가 등장하면서 리버풀 팬들을 달랬고, 당시 유소년팀에는 제이미 캐러거, 스티븐 제라드, 마이클 오웬 등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1994년 수네스가 떠나면서 로이 에반스(Roy Evans) 감독이 새로운 사령탑에 오르는데 에반스는 부임 첫 시즌 리그컵 우승에 성공한다.

에반스가 이끄는 리버풀은 나쁘지 않았다. 리버풀은 부진했던 지난 오랜 시간에 비해 높은 성적을 유지하는 팀으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우승까지는 항상 2% 모자랐고, 선수들은 축구에 집중하지 않아 언론들로부터 조롱을 듣기 일쑤였다. 1998년 제라르 울리에(Gerard Houllier) 감독이 공동 감독으로 부임하나 성적은 갈수록 복구 불가가 됐다.

▲ ⓒ리버풀 공식 홈페이지

이후 에반스가 떠나면서 울리에는 단독으로 감독직을 수행하게 됐다. 이때 울리에는 캐러거, 제라드, 오웬을 모두 중용하기 시작했다. 오웬은 1998 FIFA 프랑스 월드컵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원더 보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고, 리버풀의 황금기는 다시 시작될 것처럼 보였다.

팀 전체를 새롭게 재편한 울리에는 2000-01시즌 결국 결실을 맺는 데 성공했다. '컵 트레블'을 기록한 것이었다. UEFA컵(現 UEFA 유로파리그 전신) 결승전에서 요르디 크루이프가 이끄는 데포르티보 알라베스를 상대로 5-4 승리를 거뒀고, FA컵과 리그컵에서도 우승했다. 리버풀의 전성기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커진 기대감 탓인지 이후 리버풀은 부족한 모습으로 일관하며 2004년까지 우승 트로피를 먼 발치에서 지켜봐야만 했고, 그의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변화를 위해 수네스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리버풀은 발렌시아로부터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을 데려왔고, 오웬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키지만 첼시 조세 무리뉴 감독의 관심을 받던 제라드는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 ⓒ디스 이즈 안필드

그리고 이 스페인 감독은 다시금 리버풀의 '붉은 제국'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때는 2004년 12월 8일,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6차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버풀은 16강 진출을 위해 2골 차 승리를 거둬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선제골을 실점하고 만다. 16강 진출을 위해 필요한 골은 3골. 베니테스의 용병술이 적중이라도 하듯 플로랑 시나마 퐁골과 닐 멜러가 연달아 골을 터뜨렸지만 여전히 1골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 했던가. 리버풀에는 캡틴 제라드가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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