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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퍼' 조던 헨더슨의 리버풀 10년
배웅기  |  baeverpo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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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23  19: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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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닷컴

'스키퍼'의 의미를 아는가? 스키퍼는 영국 스포츠의 '주장'을 이르는 말이다. 보통 잉글랜드 축구에서 스키퍼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리버풀을 대표했던 주장 스티븐 제라드를 떠올린다. 하지만 스키퍼의 정의는 더 이상 제라드가 아니다. 이제 스키퍼는 제라드의 후임 주장, 조던 헨더슨이다.

헨더슨은 2011-12시즌을 앞두고 리버풀에 합류했다. 1,670만 파운드(한화 약 254억 원)의 비싼 이적료였다. 시작은 좋지 않았다. 리버풀 암흑기를 대표하는 네 명을 이르는 사황(찰리 아담-헨더슨-스튜어트 다우닝-앤디 캐롤) 중 하나로 불렸다. 2012-13시즌 브랜든 로저스 감독이 부임한 후에는 풀럼의 클린트 뎀프시와 트레이드될 뻔했다.

그런데 그런 헨더슨이 2020년 현재 리버풀에 없어선 안 될 핵심이 됐다. 2019년 6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후 헨더슨은 주장 자격으로 우승 트로피를 높이 들어 올렸다. 리버풀의 시대가 다시금 도래했다. 많은 리버풀 팬들이 기뻐했다. 그리고 동시에 눈물지었다. 헨더슨이 자신의 아버지와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장면은 전 세계에 방송됐다. 10년의 설움을 눈물로 쏟아낸 것이다.

   
▲ ⓒ가디언

헨더슨의 모토는 끝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이었다. 사소한 것에 동요되지 않았다. 선더랜드 유소년팀에서 헨더슨을 지도한 케빈 볼 코치는 헨더슨이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항상 굶주려 있다면서, 어릴 때부터 충분한 리더의 자질까지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리버풀 단장 시절 헨더슨을 영입한 데미안 코몰리는 이렇게 전한다.

"선더랜드 시절, 헨더슨이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프리킥을 찼다. 그 프리킥은 관중석으로 날아갔고, 뉴캐슬 팬들은 헨더슨을 비웃었다. 헨더슨은 다음 주 훈련장에서 프리킥을 족히 300번 정도는 연습했다. 구단 측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계속했을 거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의 영입에 투자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헨더슨은 리버풀에서만 햇수로 벌써 10년을 뛰었다. 주장은 6년 차다. 2011-12시즌부터 뛰었으니, 올 시즌은 아홉 번째 시즌이다. 총 359경기에 나서 28골 50도움을 뽑아냈다. 리버풀의 '스키퍼 그 자체' 헨더슨, 그의 10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한번 가져본다.

   
▲ ⓒ리버풀 에코

2011-12 : '사황' 윙더슨의 서막

리버풀 레전드 케니 달글리시 감독이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후, 리버풀은 헨더슨을 영입했다. 하지만 기용 포지션이 이상했다. 애꿎은 디르크 카윗을 내치고 우측면 윙어로 활용했다.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했을 법도 하지만, 그 자리는 찰리 아담과 스티븐 제라드의 몫이었다. 간간히 제이 스피어링이 나섰다. 경기력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리버풀 팬들조차 헨더슨을 '윙더슨'이라 부르며 비판했다. 그렇게 헨더슨의 다사다난한 첫 시즌이 마무리됐다.

2012-13 : 벤치 신세

앞서 언급했듯, 로저스는 풀럼의 뎀프시를 영입하고자 했다. 여름 이적시장이 닫히기 직전 뎀프시가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입기 전까지 사실상 뎀프시의 리버풀 이적은 확정인 듯 보였다. 트레이드 카드는 헨더슨이었다. 하지만 헨더슨은 남아서 끝까지 경쟁하는 것을 택했고, 이 선택은 8년 뒤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선택 중 하나로 남게 된다.

문제는 자리가 없었다. 가끔 선발로 출전하기는 했지만 교체의 비율이 꽤 높았다. 경쟁 자리에는 '로저스의 황태자' 조 앨런과 레알 마드리드의 누리 사힌이 영입돼 활약하고 있었다. 2011-12시즌에 비해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정착하며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지만, 아직은 부족했다. 어느 순간 사황이라는 별명은 사라졌다.

2013-14 : 첫 번째 전성기, '헨수 라인'의 시작

리버풀이 시즌 끝까지 우승 경쟁을 펼쳤던 전설의 시즌이 시작했다. 라힘 스털링, 다니엘 스터리지, 루이스 수아레스의 'SSS 라인'은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공격진으로 남았다. 이 뒤를 제라드, 헨더슨이 받쳤다. 뛰어난 활동량을 바탕으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역할을 맡은 헨더슨의 활약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맞은 첫 번째 전성기였다.

특히 수아레스와 호흡이 압권이었다. 일부 리버풀 팬들은 제토(제라드-페르난도 토레스) 라인이 부활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리버풀의 프리미어리그 출범 후 첫 우승 경쟁에 헨더슨은 중요한 키였다. 시즌 말미 맨시티와 경기에서 퇴장당한 이후 리버풀은 헨더슨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끼며 우승 트로피를 내줘야만 했다.

   
▲ ⓒ토크스포츠

2014-15 : 전성기, 행운이 아니었다.

2013-14시즌 기가 막힌 전성기를 맞이한 헨더슨의 활약은 행운이 아니었다. 하지만 맡는 역할이 조금 달라졌다. 2013-14시즌은 '핵심 열쇠'였다면, 2014-15시즌은 '가장'이었다. 수아레스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고, 스터리지는 엉덩이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제라드는 기동력을 상실했다. 면허도 없는 헨더슨이 선장이 됐다. 결국 마지막 경기 스토크 시티에게 1-6으로 패한 리버풀은 절망 속 시즌을 마쳤다.

2015-16 : 족저근막염

시즌 초반 로저스가 결국 경질됐다. 구단주 측이 첫두 시즌의 노고를 생각해 2014-15시즌의 부진을 눈 감아보려 했지만, 2015-16시즌 초도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스털링이 맨체스터 시티로 떠나고 나다니엘 클라인, 조 고메스, 호베르투 피르미누, 크리스티안 벤테케 등 톱클래스 선수들이 대거 합류했지만 경기력에는 변화가 없었다.

후임으로는 위르겐 클롭 감독이 안필드에 도착했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출신의 세계적인 명장의 도착으로 리버풀은 열기로 뒤덮였다. 헨더슨에게는 족저근막염이라는 고질병이 시작됐다. 헨더슨은 UEFA 유로파리그 결승전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고, 리그 역시 통증 탓에 절반 이상을 날려버려야 했다.

2016-17 : '헨밀둠'의 탄생, 그리고 새로운 포지션

클롭은 앨런을 내보내고 뉴캐슬 유나이티드로부터 조르지니오 바이날둠을 영입했다. 이때부터 '헨밀둠(헨더슨-제임스 밀너-바이날둠)'이라는 별칭이 탄생했고, 헨더슨은 클롭의 조언 아래 포지션 변화를 꾀했다. 기존의 중앙 미드필더에서 한 칸 내려간 수비형 미드필더, 그 중에서도 딥 라잉 플레이 메이커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변화는 꽤나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다. 딥 라잉 플레이 메이커란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위치해 수비를 하면서도 예리한 패스를 통해 공수전환을 이끄는 역할이다. 백포를 보호하는 데 있어 허점이 드러난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라고는 기동력을 상실한 루카스 레이바뿐이었던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2017년 2월 이후 헨더슨의 발은 또 다시 말썽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3개월 일찍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 ⓒ리버풀 에코

2017-18 : '사황'에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2017-18시즌 리버풀의 공격력은 가히 최고였다. 모하메드 살라가 영입되면서 피르미누, 사디오 마네와 환상 3톱이 완성됐다. 비록 후반기 필리페 쿠티뉴가 바르셀로나로 떠났지만, 그 이적료 중 일부가 버질 반 다이크에 투자됨으로써 리버풀은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헨더슨은 이 시즌 또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역삼각형의 꼭짓점에 선 헨더슨은 밀너와 바이날둠을 이끌었다. 리버풀은 리그에서도 다시 한 번 4위를 수성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1년 만에 결승전에 진출한다. 리버풀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골키퍼 로리스 카리우스의 부진과 살라의 부상이 겹치면서 1-3으로 패했다.

2018-19 : 빅 이어에 입 맞추다

헨더슨이 리버풀에 합류한 지도 어언 7년이 지난 이후였다.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후 리버풀에게 좌절할 시간은 없었다. 알리송 베케르, 파비뉴, 나비 케이타, 세르단 샤키리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속속 합류했다. 이 시즌 리버풀은 아쉽게 리그 우승에 실패했지만, 30승 7무 1패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겼다. 단지 더 엄청난 기록의 팀이 위에 존재했을 뿐이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년 만에 다시 결승전에 진출했다. 헨더슨은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를 오가며 활약했다. 특히 바르셀로나와 4강 1차전에서 0-3으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4강 2차전 4-0 대승을 이끌었다. 여느 때와 다르게 결말도 해피엔딩이었다. 리버풀은 손흥민의 토트넘을 무찌르고 14년 만에 빅 이어를 들어 올렸다. 헨더슨은 맛깔나게 셀레브레이션했다. 여태까지 우승 못한 게 미안할 정도로.

헨더슨은 경기가 끝나고 펑펑 울었다. 아버지한테 안겨 평생 쏟아낼 눈물을 다 쏟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버풀 팬들도 헨더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리버풀 팬들의 인식을 한꺼번에 바꿔버린 헨더슨이 지난 9년간 해온 노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리버풀이란 도시의 마음 속에 헨더슨은 전임 주장인 제라드만큼 자리 잡고 있었다.

   
▲ ⓒ토크스포츠

2019-20 : 제라드도 하지 못한…

이제 목표는 리그. 리버풀은 EPL 출범 이후 단 한 번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제라드는 모든 상을 휩쓸었지만 리그 트로피에는 손도 대보지 못했다. 헨더슨은 지금 그 트로피 바로 직전까지 와 있다. 코로나19로 시즌이 중단되기 전까지 리버풀은 27경기 1무 1패를 거뒀다. 2위 맨시티와는 무려 25점 차다. 사실상 뒤집어지기 힘든 수치다.

헨더슨은 올 시즌부터 다시 중앙 미드필더로 돌아왔고, 역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경기장 모든 곳에 헨더슨이 있었다. 롱패스, 탈압박, 활동량 뭐 하나 뒤지는 게 없었다. 특히 우측면에서 트렌트 알렉산더 아놀드와 호흡은 상대가 알면서도 막지 못할 정도였다.

이제 리버풀은 리그 우승의 9부 능선을 넘었다. 일반인이 감독해도 우승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현재 EPL은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지만, 무관중 시즌 재개를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어떻게 되든 많은 관중 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건 힘들게 됐다. 하지만, 리버풀 팬들은 언제가 됐든 그 결실을 기다릴 수 있다. 한 리버풀 시민은 말한다. "지금껏 30년을 넘게 기다려왔는데, 뭐."

   
▲ ⓒESPN

마지막으로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업적은 헨더슨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헨더슨은 아직 29세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도 은퇴하지 않았고, 리버풀에서도 완벽한 전성기를 맞았다. 제라드도 35세까지 리버풀에서 활약했다. 우리가 리버풀 주장 헨더슨을 볼 수 있는 날은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것이다. 스키퍼 헨더슨, 새롭게 비상을 시작한 그의 끝은 어디일까.

한편 최근 헨더슨은 EPL 20팀의 모든 주장에게 연락을 돌려 설득 후 코로나19 성금 모금 캠페인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선행은 다수 축구인들의 칭찬을 이끌었고,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은 바 있다.

리버풀의 위대한 주장, 레전드 조던 헨더슨(Jordan Henderson)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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