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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고요한 밤이었다. 2003년 2월 17일 어쩌면 예고된 날이었다.

 

우리 집은 무척이나 가난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집에는 온통 술병과 담배꽁초만이쌓여 있었고 어머니 내가 어릴 적 집을 나가셨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온 나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등교를 했고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처음 왕따를 당하며 중학교, 고등학교를 올라가서는 온갖 학교폭력에 시달리며 멍 자국으로 얼룩진 학창시절을 보냈다.

 

내가 21살 때인 2002년 7월 군대에 입대했다. 처음 군대에 입대했을 때 나는 너무 행복했다. 생계유지를 위해 고등학교를 졸업 후 갖은 막노동이란 막노동은 다 경험해본 나는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는 군대라는 공간이 지상낙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다시 한번 학창시절의 악몽이 떠올랐다. 매일 밤 영문도 모른 채 선임들에게 구타와 폭언을 당했고 그때부터 온갖 빨래와 심부름은 다 내 몫이 되었다.

 

매일 밤을 불안해 떨며 잠을 이뤘고 구타가 없는 날이면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 라는 안도감으로 잠을 이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3년 2월 17일, 그 날밤은 유난히도 고요했다.

 

새벽 2시 여느 때처럼 경계근무에 나갈 준비를 하며 선임을 조심스럽게 깨웠지만 빨리 깨웠다는 이유로 뺨을 맞고 온갖 폭언을 들으며 터벅터벅 초소로 향했다.

 

그렇게 경계근무 투입되고 침묵만이 초소를 감싸고 있을 무렵 김 병장이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야 근데 너희 부모님은 뭐 하시냐?”

 

질문보다 나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잠시 뒤

 

“어휴 너만 봐도 알겠다.” “소변 보고 올테니까 집 잘 지키고 있어라”

 

수많은 모욕적인 말과 폭언 폭행을 당한 나였지만 피가 거꾸로 쏟는 듯한 느낌 이였다.

 

그러던 중 김 병장이 놓고 간 실탄 키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자물쇠로 손이 향했고 그동안의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방아쇠를 당기는 녹슨 쇠소리만이 고요 속에 자리했고 결국 그날의 고요는 폭풍전야로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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