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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치는 날 밤이었다. 나는 그 할머니를 만났다. 나는 상하차 알바를 마치고 고된 몸을 이끌어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매서운 바람이 불고 살을 째는 듯한 추위에 온몸을 움츠리고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바닥만 보고 걷던 내가 할머니를 발견할 수 있던 것은 맨발이 보였기 때문이다.

맨발로 있으면 살이 찢어질 것 같은 추위였는데 그 할머니는 새빨간 발을 하고 잠옷으로 입을 법한 얇은 옷을 입고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시는지 할머니의 옆에는 한 개의 수레와 여러 개의 상자 박스들이 접혀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추위에…’

나는 그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려고 했지만 지나칠 수가 없어 가던 길을 멈추고는 할머니 앞으로 갔다. 이 옷을 벗어주면 나는 얇은 점퍼 하나로 겨울을 나야 할 테지만 할머니의 몸은 추워서 틀다 못해 곧 피가 날 것 같았다.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는 할머니에게 나는 내 점퍼를 벗어서 입혀주고는 말했다.

“할머니 이 날씨에 이렇게 계시면 정말 큰일 나요. 제가 드릴 건 없고 따뜻하게 어디 안에라도 들어가서 계세요 네?”

아무 말 없이 고맙다는 듯 고개만 끄덕이는 할머니를 두고 나는 몸을 한껏 움츠리고는 다시 내 길을 나섰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왜일까 내가 할머니를 지나치지 못한 것은…

옷을 주고 다시 내 갈 길을 걸어가는데 문득 깨달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베푼 첫 선의의 행동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지독히도 이기적인 사람이라 남을 돕는다는 건 내 사전에 없는 일이었다. 나 혼자만 잘 살면 되고 아주 잘 살게 될 때쯤 그 정도 여유로워지면 도움을 줘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고 살던 내가 개의치 않게 내 옷을 스스럼없이 벗게 한 그 할머니는 뭘까…

그날 이후로 내 인생은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매번 떨어지던 공무원 시험을 떡하니 붙고, 진급과 모든 행운은 나에게 온 것 같아 나는 자주 그 길을 지나쳤지만 상자만 있었을 뿐 할머니를 다시 보지는 못했다. 딱 한 번만 더 마주친다면 이번엔 따듯한 옷 한 벌과 밥 한 끼라도 사드리고 싶어서 그 패딩과 행운을 바꾼 것 같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오늘따라 운이 좋지 않은 탓인지 괜히 불려가서 된탕 깨지기나 하고 일진이 더러운 날이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의 첫날이 온 것 같은 날이었는데 그냥 집에 가서 맥주나 한잔하고 잠이나 자자 생각하며 빨리 걸어가고 있었다. 항상 비어있던 할머니가 있었던 그곳에 한 남자아이가 앉아있었다. 한 10살이나 되었으려나?

나는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내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그 아이가 내 패딩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저건 내 패딩인데…" 아이에게 말을 걷는데 아이도 말은 않고 한 쪽으로 손짓을 한다. 아이를 따라가다 보니 작은 식당이 나오고 그곳에 내가 패딩을 전해줬던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나를 보고는 고맙다고 그때는 참 고마웠다고 내 두 손을 잡으며 앉으라고 한다. 아들이 제 처와 함께 갑작스레 떠난 뒤 좌절하던 그날 나에게 옷을 줘서 참 고마웠다고 말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같이 그곳에 가서 밥을 먹었다. 혼자 먹던 밥상에는 남자아이가 앉아서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고 또 자리가 하나 늘어 할머니도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다.

또다시 한 해가 지나 눈보라가 치는 한겨울이 되었다 나는 양손에 한 아름 선물을 들고는 밝은 표정으로 가게로 들어간다. 가족 하나 없던 외로운 나에게 눈보라가 치던 아주 추운 겨울날에 가족이 생겼다.

매일 혼자 밥을 먹던 나는 이제 두 사람과 같이 밥을 먹고 나를 걱정해주고 생각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생겼다. 나밖에 모르던 차갑고 시리던 나는 매서운 눈보라가 부는 추운 날 아주 따듯한 사람이 되었다. 패딩과 바꾼 행운일까 눈보라의 기적일까? 나는 그렇게 나의 가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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