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 여행기

"여행의 시작"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여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내가 떠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우습게도 날씨 때문이다. 참을 수 없이 더웠던 어느 여름날 이러다 정말 쓰러지겠다 싶을 때, 지나간 겨울을 길게 즐기지 못 한 게 후회되었다. 그때 다짐 했다. 이번 겨울은 정말 시원하게, 다음여름이 와도 더운 게 추운 것 보다는 낫겠지 싶을 정도로 정말 추운 나라로 떠나야겠다고. 그날 나는 고등학교 친구를 꼬드겨 겨울 러시아 여행을 계획했다. 그렇게 나의 21일 동안의 러시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 백다혜 / 이르쿠츠크 시내

정말 떠날 수 있을까’

여행을 떠나는 데에는 큰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나는 황당하게도 아무 계획 없이 러시아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정말 ‘표만’ 끊었다.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이제 꼼짝 없이 러시아로 가게 되었다. 그러곤 여행 동안 굶어 죽을 순 없기에 급하게 여행자금을 마련하고 계획을 세웠다. 물론 정말 러시아에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무턱대고 비행기표를 끊은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든 되겠지’, ‘돈이 부족하면 굶지 뭐’ 라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시베리아 한복판을 달리고 있었다.  

▲ 백다혜 / 이르쿠츠크 알혼섬의 개들과 달리고 있는 나

굳이 겨울에 러시아?’

1월의 러시아는 여행하기에 최악의 조건이었다. 영하25도의 극한의 추위와 흐린 날씨, 그리고 눈까지 사람들은 굳이 겨울에 추운 러시아를 가냐며 사서 고생한다는 걱정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러시아로 떠났다. 막연하게 얼어붙은 바이칼호수 위를 걸어보고 싶었다. 물론 이 또한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후회 했다.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추위였다. 콧물이 얼고 이마가 떨어져 나갈 듯 했다. 발가락은 얼어 감각이 없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겨울이었기에 진짜 러시아를 보고 왔다 자부할 수 있다. 겨울나라로 불리는 만큼 겨울의 러시아는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나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기 세시간 전에 기차 창 밖으로 보여지는 에메랄드 빛 바이칼호수가 아직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나에게 다시 그 추운 곳으로 돌아가겠냐고 물어본다면 한치의 고민 없이 나는 다시 가방을 꺼낼 것이다.

▲ 백다혜 / 열차에서 보이는 바이칼호수
▲ 백다혜 / 알혼섬에 쌓인 눈

낭만이 가득한 횡단열차?’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까지 4일,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4일,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하룻밤까지 총21일의 여정에서 약 8일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보냈다. 기차 안의 생활은 기대처럼 낭만적이지 만은 않았다. 기차에 타고 있는 동안은 씻지도 못하고, 그 좁은 공간에서 며칠을 지내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만큼 아쉬운 이별을 겪기도 하며,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 한마디도 못한 채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그만큼 막연한 로망을 갖고 기차에 오르기엔 감수해야 할 점이 많다.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기차에 올라 상상과 다른 현실에 실망하기도, 혼자 외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새 이 기차의 규칙에 적응하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차 안에서 무언가 하려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억지로 친해지려 전전긍긍 하지 않았고, 빈 시간을 채우려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넘치도록 주어진 여유와 나의 시간을 즐겼다. 내가 그곳에 적응하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 백다혜 / 시베리아 횡단열차 정차역에서

여행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나에게 러시아는 여태 여행했던 여러 나라들 중 최고였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며, 난생 처음 내 힘으로 떠난 여행이기에 더 값지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과 투명하게 얼어붙은 호수, 이국적이고 알록달록한 색감의 도시,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까지 나에게 러시아는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소리와 풍경이 생생히 그려지는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당신이 지금 여행을 망설이고 있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떠나라! 그런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버리기엔 우물 밖은 너무나도 넓고 아름답다.

▲ 백다혜 / 모스크바 붉은광장
▲ 백다혜 / 이르쿠츠크 알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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