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국열차'를 보고

 이번에 새로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는 작품이 황금종로상 수상이라는 엄청난 명예를 안게 되었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의 다른 작품들까지 다시금 회자가 되기 시작했고, 그의 또 다른 명작인 설국열차를 수업시간에 보게 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장점은 자신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는데 있다. 이번 작품인 기생충뿐만 아니라 설국열차까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에 상징을 잘 부여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한 번, 영화를 보고 난 후 감독의 의도와 내가 읽어내지 못한 영화 속 장치들을 찾아보며 두 번 놀라게 되는 게 그의 매력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에서 열차가 어떤 상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 ⓒ네이버 영화

 

 우선, 영화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면 ‘피지배자들이 열차 안에서 일으키는 계급혁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부르주아 계급에 반하며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한 칼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도 그 모습이 많이 닮아있다. 아마 감독도 이러한 모습을 영화에 녹여내고자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영화는 혁명가이자 꼬리 칸의 리더인 ‘커티스’와 문의 설계자 ‘남궁민수’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커티스는 열차의 엔진을 점령하면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열차)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남궁민수는 진짜 세상은 기차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 때, 비로소 마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그들의 이념적 갈등은 앞으로 전진해 나갈수록 심화된다. 그리고 커티스가 열차의 핵심인 엔진 칸에 도달하고, 자신이 마주한 현실이 꼬리 칸에서 꿈꿔오던 이상과는 다름을 깨닫고, 좌절한다. 결국 남궁민수는 그의 딸 요나와 함께 기차에서 탈출하며 영화가 끝난다.

 

▶ ⓒ네이버 영화

 

 나에게 열차는 여행이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일이 아니라면 항상 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열차는 내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장소에 나를 데려다주는 설렘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의 열차는 내가 생각하는 열차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얼어붙은 지구를 순회하며 열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열차는 삶의 터전이자 그들만의 또 다른 하나의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차이는 상징적 상호작용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먼저 상징은 함축적 의미를 나타내는 기호이자 언어를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징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속해있는 집단과 문화는 내가 의미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따라서 똑같은 단어를 두고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의미가 다른 것이다.

 또한 열차의 꼬리 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앞 칸의 사람들은 위선자들이며 독재자다. 그래서 그들은 타도 당해야할 대상이며 혁명을 통해 바꿔야할 악인 것이다. 이는 앞 칸의 사람이 본래 악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생겨난 생각이 아니다. 앞 칸의 사람들이 꼬리 칸의 사람들을 ‘열차에서 쓸모없는 존재들’이라는 규정짓고 군인과 무기를 앞세워 비인간적인 대우를 계속 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꼬리 칸 사람들의 ‘자아’인 것이다. 앞 칸의 사람들이 단백질 블록을 스테이크보다 더 훌륭한 음식인 듯이 말하며 그들을 옆집 이웃처럼 친근하게 대했다면 혁명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개봉한 기생충과 설국열차는 사회의 권력관계를 주제로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열차라는 수평적인 공간에서 나타나는 권력을, 기생충은 반지하와 주택이라는 수직적 공간에서의 권력을 표현했다. 이러한 가벼운 사전지식이 영화의 흥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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