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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내게는 보이지 않는 손이 하나 있다. 남들은 볼 수 없는 제3의 손. 기형아? 그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생겼던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뿅- 하고 생겨버린, 말도 안 되는 손이다. 이 손이 생긴지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오늘 모의고사 공부했냐?"

"했을리가 있나... 너는?"

"당연히 안 했지! 야 근데 이번 모의고사 망치면 쌤이 개인면담 한다는 거 들었냐?"

"뭐? 아... 큰일났네."

 

머리를 긁었다. 성적이 눈에 띄게 나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면담에 불려가지 않을 정도의 성적을 낼 수준또한 아니었다. 담임 빡빡한데. 얼마나 걸리려나? 아 나 오늘 끝나고 약속 있는데. 헐, 늦는 거 아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급하게 책상으로 돌아가 책을 펼쳤다. 이제와서 본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건 알았지만 그냥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150% 못 볼 것 같아서, 50%라도 감면하자는 마음으로 눈을 빠르게 훑었다.

 

"지금 한다고 뭐가 달라지냐?"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봤을 때 공공제도의 기원은..."

 

옆에서 깐족대는 진석이의 말도 그냥 무시했다. 줄줄. 그냥 읊기만 했다. 아직 5페이지도 못본 것 같은데 벌써 예비종이 울렸다. 아씨, 아직 안 되는데. 조금이라도 더 보려 눈을 돌릴 때 선생님은 들어오셨고, 호령이 떨어졌다.

 

"보던 거 다 집어넣어라."

 

마지막까지 미련을 놓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보다 안 집어넣냐는 선생님의 말에 찝찝한 기분으로 집어넣어야 했다.

시험은 조금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시작됐다. 주위에선 사각거리는 샤프 소리와 딱딱 떨어지는 볼펜 소리, 그리고 수정테이프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만 아무것도 못풀고 있었다. 절로 한숨 소리가 나왔다. 후. 그마저도 신경이 쓰이는지 앞에 앉은 애가 어깨를 괜히 들썩거렸다. 거참 미안하게 됐다. 빈정상한 얼굴을 보였다.

그때였다. 처음으로 '그 손'이 나온 것은. 제3의 손이 갑자기 반투명한 상태로 나타나 책상 서랍 속에서 책을 꺼냈다. 손이 닿자마자 책 역시 불투명하게 변했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가? 눈을 비볐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이게 보이지 않는 건지 다들 문제 풀기에만 열중이었다. 책은 정확히 내가 모르는 문제의 설명이 적힌 페이지를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첫 컨닝이 시작됐다.

 

당연히 성적은 잘나왔다. 갑자기 수직상승한 성적에 의심을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날 내 행동에 수상한 점이 없었던 것을 감독한 선생님과 주위 애들이 더 잘 알았기에 아무도 공식적인 이의는 제기하지 않았다. 결국 내 급변한 성적의 이유는 내가 남모르게 집에서 공부를 했을 거라는 추측에서 끝이 났다.

몇 달이 지나도 시험만 되면 그 손은 불쑥 튀어나왔다. 이러다 수능날도 나오는 거 아니야? 은근한 설렘이 몸을 휘감았다. 수능까지는 단 한 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야 벌써 수능이 코앞이다. 너 공부 어떻게 했어? 나 마음잡고 해보려고 해도 잘 안 되더라..."

"그냥 한 거지, 뭐."

"부러운 놈."

 

진석이가 옆에서 뭐라고 해도 알려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알려줘봤자 믿지 않을 게 분명하기도 했고, 설사 믿는다 해도 후폭풍이 오는 건 아닌가 싶어 입을 다물게 됐다. 지금은 무사히 수능을 넘기는 게 중요할 뿐이었으니까.

옆에서 웅얼대는 진석이를 무시하고 선생님 몰래 내지 않은 핸드폰을 꺼내 게임이나 했다. 참, 속 편한 인생이었다.

 

 

 

"모두 핸드폰 끄고 가방은 앞으로 내주세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능이 시작됐다. 여유롭게 컴퓨터용 사인펜 하나만 꺼내 비스듬히 등받이에 기대 앉았다. 답안을 고치기 위한 수정테이프나 샤프, 지우개도 당연히 꺼내질 않았다. 어차피 그 손이 답을 보여줄 텐데. 이제부터 시작하세요. 그 소리와 함께 모두가 시험지를 넘겼다. 자 그럼 이제 답을...

 

"...어?"

"거기 문제 있어요?"

 

이쪽으로 걸어오는 감독관의 발소리가 들려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손이 나타나질 않았다. 처음 그 손을 봤던 날처럼 몇 번이나 눈을 깜박이고, 비벼도 봤지만 멀쩡히 달린 내 두 손만이 보일 뿐이었다. 시험지를 확인 한 감독관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한 번 보고 돌아갔다.

어떡하지? 나 이제 어떡하지? 처음 겪는 당황스러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결국 마지막 탐구 영역이 끝날 때까지 손은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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