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란희

 

대구의 대표적인 원로작가인 전선택님의 회고전이다. 80년 동안 걸친 작가의 인생을 작품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아직 미술에 'ㅁ'도 모르는 나이지만, 최대한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고 내 시각에서 바라보려하였다.

작가는 시대별로 표현하려는 것이 달라보이지만, 결국은 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사람이다.

월남과 실향의 아픔으로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어둡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아니다.

 

 

▲ ⓒ 김란희

 

 

 

1950년대에는 사실적인 재현과 자연적 모티프의 재구성으로,

대구시내의 모습을 사실적인 시각으로 표현하였다. <동결>(1958)을 바라보면 처음에는 빠른 스케치로 사물의 특징에 대한 정확한 표현을 끌어내고 보이는 상황 그대로 그의 상태와 그가 말하고자하는 무언가를 표현하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중 내 시선을 사로 잡았던 것은 <자화상>이다. 자신의 얼굴을 각기 다른 각도로 다르게 표현하였다. 하지만, 그는 늘 무표정이다. 아마 그가 그림을 몇년 전에 그렸다면 저 새는 사실적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반면에 <운명>(1958)을 보면, 시간이 갈수록 대상을 단순화를 추구하며 추상화를 시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평면적인 형식으로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등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도마 위의 생명을 단순화하고 칼 역시도 단순화시켜버렸다.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러한 작품을 통하여 그의 마음을 비추어 볼 수 있다.

 

 

ⓒ 김란희

 

 

 

1960년대에는 국전 출품과 반(反) 국전주의, 자연주의적 구성 / 반(半) 구상적 추상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1960년대에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렸다. 국전 출품을 위해 50년대 말과 또 다르게 사실적인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그 모습을 길게 가지 않았다. 60년대 중반부터 다시 사물을 단순화된 반구상적인 형태로 그린다. 봄을 상징하는 <경칩>(1964)은 잠에서 깬 개구리와 '봄'과 관련된 생명들을 평면화하여 한 작품에 추상화하였다. <범선>(1964)에서는 비교적 밝은 색깔을 많이 사용하여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를 표현하였다. <석공>(1962) 역시 돌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드는 석공의 모습을 자연적으로 표현하였다. 자연주의적인 작품과 구상에 반하는 반구상적 작품을 동 년도에 그리는 그의 능력에 감탄하였다.

 

 

▲ ⓒ 김란희

 

 

 

1970년대에는 '이상회'를 창립, 심상적 이미지의 심미적 탐구를 진행하였다.

서창환, 신석필, 강우문, 이복과 '이상회'를 창립하며 감성적인 화면을 구축하게 되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원근법이나 사물의 정확한 외형 묘사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하지만, 대상의 형태와 색체와 그를 그리는 감정이 달라지지 않게 수정에 수정을 반복하였다. 주로 인위적인 것들보다 산과 구름, 꽃과 나무, 사람들을 통하여 인생과 자연에 대한 예찬을 담아 내었다. 이러한 설명과 작품을 보고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인간은 자연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인간답다'는 대사가 떠올랐다. 인위적이지 않은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그런 지금 역시 통용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 ⓒ 김란희

 

 

 

1980년대에는 한국신구상회 활동으로,

교직 생활에서 물러나 전업 작가가 되었다. 한국신구상회를 창립하여, 구상과 비구상 사이에서 극단적인 조형이념을 지양하고 더 자유롭게 표현하려 하였다. 50년대부터 그는 '자연적'인 것을 추구하였다. <귀로>(1981) 같이 일상의 경험을 개념화시켰다. 주제나 모티프는 주변 일상을 토대로 많이 재구성하였다. 대상의 특징을 간략하게 표현하여 오히려 명료함이 더 돋보이게끔 표현하였다. 채색 역시 따스한 색상을 많이 사용하였다.

 

▲ ⓒ 김란희

 

 

 

 

 

 

 

 

 

 

 

 

 

 

1990년대 이후는 원숙한 작품세계_인생과 자연에 대한 관조적 시각으로,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추구한 작품의 스타일이 반복되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쭈욱 전시장을 둘러보면, 언뜻 본 적 있던 그림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작품이 아니라 원로한 작가의 성숙해진 그림을 접할 수 있다. 인간 속에서 자연을 추구하던 70년대와 달리 90년대 이후에는 자연을 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풍경이 많이 나타난다. 풍경은 평북 정주나 곽산 등지 등 북한의 모습에 가깝다고 한다. 한 평생 실향민으로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그의 모습이 작품으로 들어난 것이다.

 

 

그는 실향민이라는 아픔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다. 작품 속 아이들부터 여인까지 늘 무표정으로 쳐다본다.

 

 

 

 

"나의 작품 제작에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나에게 내재된 무엇을 작품화하려고 여러 가지로 구상하고 준비를 서두를 때가 그 첫째이고, 애쓰고 애써서 하나하나 해결하고 완성되어 갈 때가 그 둘째이고, 셋째는 완성된 작품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일 때이다. 제작삼락이라고나 할까. 이렇듯 즐거워서 하는 제작활동이 길이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진실하게 내가 움직이고 있을 때는 나를 잊어 버린다. 즉 무아의 경지요 창조적인 망각의 상태가 된다. 제작은 나를 잊어버리는 망각의 상태에서 진행돼야 한다. 그때 나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곧 캔버스 위에 있는 것이다." 등등 그는 늘 미술에 대하여 진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작가의 한 평생 그림은 '자서전'과도 같다. 미술에 한 평생 몰두한 그의 모습을 보자하니, 끈기없이 포기하는 내 모습이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리뷰를 쓰려고 하는데에 자신이 나지 않은 것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나 역시도 하나에 몰두할 수 있는 그러한 끈기과 즐거움을 가질 수 있는 뜻깊은 계기가 되었다.

 

 

 

 

 

 

 

참고 사이트 - 대구미술관 http://artmuseum.daegu.go.kr/main/index.html

https://blog.naver.com/fksgml3223/221496159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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