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일상이어도 각자의 하루가 같을 수는 없듯, 보편적인 감정이라 하더라도 사랑의 모양은 다 다르다.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사랑이 어떻게 다 예쁘고 행복하기만 할 수 있으랴. 영화 ‘지난여름,갑자기’와 ‘남쪽으로 간다’도 그렇다. 두 작품 모두 동성간의 사랑을 다룬 이송희일 감독의 퀴어 영화이지만, 같은 관계에서도 다른 마음을 안고 지내는 네 주인공의 감정이 돋보인다.

 

▲ ⓒ 네이버 영화

 

먼저, ‘지난여름,갑자기’는 담임 선생님과 학생 상우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감정을 담아낸 영화다. 일단, 다 여차하고 선생과 학생간의 사랑은 애초에 말이 안되는 비도덕적인 관계 아니던가. 그런데 이 조심스러운 관계에 동성애라는 요소가 더해진다니. 자극적이고 위험하다. 포스터에 쓰인 대사나 문구도 그렇다. ‘소년의 유혹’, “수업 시간에…계속 나 훔쳐 본 거 알아요.” ‘유혹’이나 ‘훔쳐 봤다’는 말이 강하게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대사가 좀 유치한 거 같기도 한데(..), 어쨌든 궁금하다.

 

그런데 웬걸, 사제관계라는 막장스러운 진부한 설정에도 이 영화는 풋풋하고 싱그럽다. 고등학생 상우 역할을 맡은 배우 한주완의 청순함 덕분일까. 영화에는 여름과 잘 어울리는 청량함이 묻어있고, 관객을 상우의 시점으로 끌어들이는 미묘한 힘이 있다. 아파하면서 발을 내딛는 상우가 안타까웠고, 바람을 맞으며 유람선에서 웃음을 짓던 그 모습이 참 예뻤다. 아닌 걸 알지만서도, 응원하게 된다. 영화는 영화니까.

 

▲ ⓒ 네이버 영화

선생님 경훈은 상우보다 훨씬 많은 사랑과 이별을 경험했을 것이다. 영원할 것처럼 구는 상우의 사랑도 사실은 얼마나 한 순간의 것인지 헤아리고 있고, 자신의 마음을 인정했을 때 어떤 말도 안 되는 어려움을 겪을지도 이해한다.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비현실적 관계를 조금이나마 현실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결국 마음을 가려야만 한다는 게 경훈의 결론이다.

 

그래서 결말이 더 애틋하다. 흐르는 배경음악도 분위기를 더한다. 혹자는 인사치레로 건네기도 하는 포옹이, 누군가에게는 참다 참다 터져 나온 마음 한 줌일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하면, 볼 수 없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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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간다’는 ‘지난여름, 갑자기’와 전혀 다른 분위기다. 어둡고, 칙칙하다. 영화는 나란히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두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운전을 하던 준영의 모습이 상스러워서 ‘왜 저럴까’ 언짢았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유가 드러난다. 싫다는 상대에게 사랑을 계속 요구하면 있던 정도 떨어질 테다.

 

준영은, 자신에게 했던 폭언과 혐오의 말이 진심이냐며 재차 확인하는 기태에게 이야기한다. “더 이상 상처주기 싫다.” 준영의 마음이 정말 순간적이었던 건지 혹은 세상에 맞서고 싶지 않아 자신을 부정하는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영화를 보면서 제일 아이러니한 점은, 같은 사랑이라 하더라도 추억하는 모습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혹자에겐 불장난과도 같았던 마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끌어 안고 자꾸 보고 싶은 선물 같은 기억이라는 게 참 안타깝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춤추면서 신나게 사는 것. 기태의 바람은 남쪽으로 가는 것이다. 결국 제대를 코앞에 두고 있던 그는 탈영이라는 극단적인 갈림길을 향해간다.

 

▲ ⓒ 네이버 영화

어떻게든 준영을 자신의 옆에 두고 싶던 기태의 행동은 끔찍한 집착(과 협박)으로까지 이어졌지만, 그가 할 수 있던 마지막 발악이라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안된 마음이 든다. 진흙탕 속에서 난투를 벌이다가,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하지 말라던 모습은 애처로웠다. (하지만 잊지 말자. 역시나 영화는 영화다. 실제 상황이라면 영창은 물론, 바로 고소에 콩밥 각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멀어지는 준영을 보며 기태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인다. 신나게 살 거라던 자신의 포부를 실천하기 위함이다. 씨네21의 장영엽 기자는 이 작품을 보고 ‘뽕짝 리듬을 닮은 사랑’이라고 평론했다. 어떻게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하동문이다.

 

(TMI 하나. 기태 역할의 배우 김재흥이 정-말 잘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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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양은 다 다르지만, 서로를 원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동성애는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로,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배제하기 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랑의 본질을 바라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작품 모두 인상 깊게 봤다. 음 … 이송희일 감독의 능력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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