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

▲ ©네이버영화

내가 느끼기엔 ‘페미니즘’ 영화였다.
아침부터 상사가 전날 소개팅 받은 여자의 얼굴이 거뭇거뭇했다며 민희에게 얘기한다.
‘대체 왜?’ 굳이 민희에게 얘기해서 얻는 것이 없는데 굳이 왜? 라는 생각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필 그날 저녁 사귀었던 남자 선배가 전화가 와서 만나자고 한다.
‘당연히 인중이 신경 쓰이겠지.’ 그럴 수밖에 없다. 오전에 그런 얘기를 듣고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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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며 조심스레 면도하던 민희는 기어코 피를 본다.
민희를 불렀던 남자 선배는 계속 과거 얘기를 하며 민희의 어깨를 잡는다. 누가 봐도 성희롱이다. ‘옛날엔 아기 같았는데. 이렇게 안 입고 다녔잖아.’ 이쯤 되니 나는 민희가 답답했다. 한마디 할 법도 한데, 굳이 헤어진 남자친구가 부른다고 나온 그녀의 심리도 이해되지 않았다.
민희는 계속 같이 있어 달라는 선배에게 당당하게 이러지 말라며 자리를 뜬다.
‘그래 저거지!’ 민희가 크게 얘기했을 때, 남자 선배가 당황하는 것을 보며 기뻤다. 나 역시 같은 여자니까. 사실 좀 더 사이다 같은 속 시원한 멘트를 원했지만, 조용히 눈치만 보며 지내던 민희라는 캐릭터에게 이조차도 용기 있는 행보였음을 알고 있다.

다음날 면도에 대해 말한 상사가 민희의 다친 얼굴을 보며 묻자, 아주 당당하게 말한다.
“면도하다가요.”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을 별거 아니다.
굳이 민희에게 커피 한 잔을 부탁하며 말을 걸어오던 상사가 쌤통이었다.
상사와 헤어진 남자친구와 만났을 뿐인데, 하루 사이에 조금씩 변하는 민희의 모습을 보며 다행스럽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어쩌면 나 역시 또 다른 ‘민희’가 될 수 있으므로.

2018 서울독립영화제 2일 차에는 단편영화 11편과 장편영화 2편을 봤다.
단기간에 영화를 이렇게 몰아보는 것은 꽤 오랜만의 일이었는데, 그런데도 즐거웠다.
졸업하고, 취업하게 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소중한 시간임을 알기에, 영화제 동안 누구보다 즐기며 서울에서의 여정을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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