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트루먼 쇼>는 트루먼이라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TV쇼로 방영되는 내용의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많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이 누군가의 목적으로 소비되어도 되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트루먼 쇼를 기획한 크리스토프 감독은 자신을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는 TV쇼를 만드는 사람이라 칭한다. 그 말을 통해서 그는,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트루먼 쇼를 통해 안전하고 편안한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아가 한 명의 개인에게도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좋은’ 삶을 선물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직업적 사명에는 끊임없이 윤리적인 딜레마가 제기된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공익 하에 한 사람의 일생이 본인도 모른 채 TV프로그램으로써 소비된다. 공익적인 목적에서 여러 사람에게 이익을 준다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로인해 누군가가 희생양이 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 희생양이 다수에 비해 아무리 소수일지라도, 그 것이 그저 한사람일 뿐이라도 우리가 그의 생활을 침해하면서까지 이익을 얻어야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다수가 그의 감정을 조종하고 연출하면서까지 우리가 이익을 얻어야하는 이유와 그 이익의 필요성은 대체 얼마나 될까?

 

 크리스토프 감독은 자신이 연출한 세상 안에서 그 삶이 안전하다는 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트루먼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 더 중요한 인물로 보여 진다. ‘안전한’ 세트장 밖을 나가지 못하도록 의도적인 트라우마를 심어주고, 트루먼이 여행을 계획하려 할 때마다 큰 고난과 시련을 연출한다. 그리고 크리스토프 감독은 말한다. ‘겁이 나서 돌아 올 것이다.’ 그 말을 함과 동시에 그는 자신의 세상 안에서 사는 트루먼을 걱정하고 연민하기 보다는, 안전하기만한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겁쟁이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채로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는 것으로 보여 지기도 한다. 그는 트루먼이 ‘겁쟁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이 ‘시청률이 가장 높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감독’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써 트루먼을 사용했다는 것으로 느껴진다. 공익을 위한 개인의 권리 침해에는 다양한 윤리적 딜레마가 제기되지만, 사익을 위했다는 것은 더더욱 개인의 권리침해를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크리스토프 감독의 의도가 정말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함이었든,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였든 그 것을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그저 TV쇼로 소비할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그 쇼를 보며 웃고 울지만 쇼가 끝나면 ‘다른 채널에서는 뭐하지?’ 하며 채널을 돌린다. 다수에게 한 순간 웃고 우는 감명을 주기 위해, 또 자신의 명예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권리까지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 누구라도 타인의 권리를 함부로 할 수 없으며, 그 것이 아무리 다수를 위한 것일지라도 우리는 개인을 위한 생각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심지어 편안한 세상을 살게 해주려했지만 트루먼을 고난에 무능한 사람으로 만든 크리스토프 감독의 윤리는 잘못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누구도 어떤 목적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 <트루먼 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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