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네이버 영화

 

오지라퍼는 “오지랖”이라는 단어에 er을 붙인 것으로 오지랖이 넓은 사람, 다른 사람의 일에 지나지게 상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영화 속 댄의 모습은 흡사 오지라퍼를 연상시킨다.

우리가 사전으로 정의 내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오지라퍼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오지라퍼이다.

 

▲네이버 영화

 

댄은 관공서에서 처음 본 케이티를 대신하여 변호하려 하고 이 때, 관공서 직원은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지 않으냐며 오지랖 부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오지랖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난 후로 타인에게 우리는 점차 무관심해지고 있다. 나와 공통분모가 없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여기어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잣대는 엄격하기만 하다. 이러한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소수가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작은 목소리마저 점차 사그라든다. 그 와중에 약자들을 목소리를 들어주고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오지라퍼이다.

 

▲네이버 영화

영화 속 댄이 적은 글이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게으름뱅이거나 거지, 도둑 혹은 사기꾼도 아닙니다. 보험 속 숫자는 더더욱 아닙니다. 나는 그저 묵묵히 책임을 다하면서 꿋꿋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굽실거리지 않았으며 이웃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나, 다이엘 브레이크는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나는 내 권리를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중을 요구합니다.”

 

댄이 소수의 목소리를 높여주는 게 크게 노력했지만, 사회규범을 위한 정해진 절차라는 명목하에 그들의 목소리는 다시 작아진다.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규범이 필요하다. 하지만 진정한 사회질서를 이루기 위한 규범은 사회가 정해놓은 틀로서 원리원칙을 근거로 들며 약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틀로 사회를 바라보며 상황에 알맞은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나와 보호받아야 할 시민임에도 설명서에 적힌 글로만 살펴보고 무시한 관공서 직원의 차이는 종이 한 장 보다 얇은 차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는 오지라퍼였던 적이 있는가? 궁금증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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