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밝히며 문재인 정부는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하겠다는 취지로 청와대 국민청원을 시작했다. 17년 8월에 만들어진 국민청원은 말 그대로 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며 게시글 수는 30만 개를 넘었으며 가장 많은 청원 수는 무려 114만 명이다. 국민청원은 국민이 국가에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매우 민주적인 시스템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민’청원의 국민은 전 국민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국민이란 무엇인가. 국민의 사전적인 의미는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 또는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이다. 그럼 ‘국민청원’에서 ‘국민’이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모두를 포함하고 있을까? 우리가 부르는 우리 속엔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지난 27일 KBS 엄경철의 시사토론에서 [성 소수자와 차별 금지법]이라는 주제의 토론에 동성애 혐오적인 발언이 이슈가 되었다. 동성애를 틀린 것으로 규정해버리고 반대해버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공영방송인 KBS에서 혐오적인 의견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 문제였다. 동성애자 역시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이다. 하지만 국민청원에서 누구도 KBS의 잘못을 꾸짖는 청원을 올리지 않았다. 국민을 위한 청원에서 국민의 존재 자체를 무시당했지만 말이다.

 

 

‘국민’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그릴 때 장애인을 그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또 다문화 가정을 그리는 사람, 탈북자를 그리는 사람, 동성애자를 그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비장애인이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성애자인 우리는 우리라는 ‘다수’의 존재를 기준으로 잡는다. 보건 복지부가 발표한 한 2014년 장애인 수는 270만 명, 인구의 약 5.6%로 대략 20명 중 한 명은 장애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길을 지나다니면 20명 중 한 명꼴로 장애인을 만날 수 있지 않다. 많은 장애인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시설에 갇혀 지역사회에 참여할 기회조차 없다.

 

2006년 4월 정부는 결혼이민자 가족과 사회 통합 지원대책을 추진하며 우리는 다문화 국가로 나아갔다. 현재 다문화 가정은 17년 기준 32만 가구로 가구원은 96만 명이지만 33%는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아직도 ‘단일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차별하고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 국민청원을 통해 이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국민청원 게시판에 ‘다문화 가정’을 검색하면 다문화 정책을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대다수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며 국적을 가진 다문화 가정은 국민이 아닌 것처럼.

ⓒ청와대

 

국민청원은 국민의 목소리에 답을 들을 수 있는 민주주의적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는 다수의 힘을 필요로 한다. 5000만 국민의 목소리 중에서도 53개의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면 수가 적은 소수자는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다. 그 누구도 소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다수는 소수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소수 역시 국민이다. 그리고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국민청원 시스템은 ‘다수’의 국민청원이다. 더욱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모두가 평등하게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소수’의 국민청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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