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와 읽기, 말하기와 쓰기

 우리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구성하는 주요한 행위로는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가 있다. 듣기와 읽기는 메시지의 수용 행위, 말하기와 쓰기는 메시지의 전달 행위이다. 또 듣기와 말하기는 구어 커뮤니케이션, 쓰기와 읽기는 문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행위는 연구의 대상이면서 실천의 양식이기도 한데, 연구 대상으로서는 이 행위를 커뮤니케이션학의 학문적 관점에서 연구하며, 실천의 양식으로서는 말 그대로 일상 속에서 이 네 가지 행위를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 전공자는 이 네 가지 커뮤니케이션 행위도 잘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이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어떠한 지부터 살펴볼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 네이버 메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디지털 시대로 규정하는 것이 옳은지 논란이 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논의 자체가 어렵고, 대부분의 독자들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를 디지털 시대라고 규정한다.

먼저 네 가지 커뮤니케이션 중 ‘듣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워크맨과 MP3 플레이어를 듣지 않으려는 자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이콘이라고 칭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을 때 혼자서 음악을 듣는 것은 지금은 일상적인 상황이지만 그 당시에는 아주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이어폰을 끼게 되면 주변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지 않을 것이고, 나는 타인보다는 나 자신을 지향하게 된다. 이런 심리적 정향을 ‘유아론’이라고 한다. ‘듣기’에 대한 글에서는 이어폰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친구, 부모 등 타인과 대화가 단절되는 상황을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다음은 ‘읽기’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인터넷을 읽는다. 인터넷을 통해 연애 오락, 지식in, 스포츠 기사 등을 읽는다. 하지만 이 자체를 한탄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읽으면 될 텐데, 우리는 제대로 읽지 않는다. 인터넷, 특히 ‘구글’이 우리를 생각하지 못하는 얄팍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다음은 ‘말하기’이다. 우리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말을 한다고 해도 겉과 속이 다른 말들을 해대는데, 이는 화자와 청자 모두에게 소모적인 대화이다. 또 우리는 말하기보다 쓰기를 택한다. 전화통화보다 문자, 카톡을 더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이 그 예시다. 이를 ‘문자성의 회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구어적 문자성’에 불과하다.

마지막, ‘쓰기’이다. 평소 글을 얼마나 자주, 제대로 쓰는가? 마틴 하이데거는 타자기의 등장 이후 손이 글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말한다. 글의 길이 또한 점점 짧아지고 있다. 짧은 글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로지 짧은 글만 쓰이고 소비되는 것은 문제가 된다.

▲ 커뮤니케이션북스

-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의 방법론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만 앞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 이것이 박승관 교수가 이야기 한 ‘말귀 열림’이다. ‘읽기’에서는 무애 양주동 박사의 『면학의 서』 라는 수필을 추천한다. 이 책에서는 즐거움의 읽기, 읽기의 원초적 즐거움을 맛보게 해준다. ‘말하기’에서는 그리스 신화 이야기와 자신이 경험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말하기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글쓰기’에서는 자신이 학창시절 신문 사설을 스크랩 했던 기억과 교수로서 글쓰기를 지도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글쓰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라고 말한다.

 

-과잉의 시대, 과잉의 커뮤니케이션

우리 주위는 미디어로 넘쳐난다. 또 우리는 상호 이해의 커뮤니케이션보다 목적 지향적 커뮤니케이션에만 관심을 갖는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할 때 이는 여러 사람, 다양한 장소로 굴러들어가기 때문에 내가 전하고자 한 의도와 다르게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 과잉 커뮤니케이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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