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나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지독한 폭염이 기세를 접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해가 저물면 옷을 여밀 필요를 느낄 만큼 쌀쌀해진 가을바람은 많은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 잊고 있던 '여유'를 만끽하게 합니다. 대지를 새파랗게 물들이던 나뭇잎들이 점차 붉고 노란빛으로 물들어가고 하늘은 마냥 높고 푸르러지는 계절, 가을.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뒤섞인 기분 좋은 기운이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바깥으로 이끌어냅니다.

 예부터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불림과 동시에 독서의 계절로도 지칭되어왔습니다. '가을'이라는 계절만이 지닌 특유의 쓸쓸함 때문일지 모르겠으나, 이 시기가 되면 많은 소설과 시작들이 눈에 띄게 사람들의 손을 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요즈음은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시기가 짧습니다. 가을이 완연해야 할 10월에 때아닌 한파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소식들은 점차 가을이라는 한 계절이 이제는 우리의 곁에 머무를 수 없는 듯 느껴져 마냥 슬프기만 합니다. 그래서 아직은 짧게나마 우리에게 주어진 가을을 더욱 잘 즐길 수 있도록, 가을 색을 띠는 몇 가지 시를 준비했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짧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이 계절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길 바라봅니다.

 

▲ 이나현

 

<내가 너를 / 나태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네가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 이정하>

 

아는가, 네가 있었기에

평범한 모든 것이 빛나 보였다

 

네가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네가 웃을 때 난 너의 미소가 되고 싶었으며

네가 슬플 때 난 너의 눈물이 되고 싶었다

네가 즐겨읽는 책의 밑줄이 되고 싶었으며

네가 자주 가는 공원의 나무의자가 되고 싶었다

네가 보는 모든 시선 속에 난 서 있고 싶었으며

네가 간혹 들르는 카페의 찻잔이 되고 싶었다

때로 네 가슴 적시는 피아노 소리도 되고 싶었다

 

아는가, 떠난 지 오래지만

너의 여운이 아직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것처럼

나도 너의 가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싶었다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

네 가슴에 머무는

한 줄기 황혼이고 싶었다

 

 

<꿈의 페달을 밟고 / 최영미>


내 마음 저 달처럼 차오르는데

네가 쌓은 돌담을 넘지 못하고

새벽마다 유산되는 꿈을 찾아서

잡을 수 없는 손으로 너를 더듬고

말할 수 없는 혀로 너를 부른다

몰래 사랑을 키워온 밤이 깊어가는데

 

꿈의 페달을 밟고 너에게 갈 수 있다면

시시한 별들의 유혹은 뿌리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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