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시나리오

ⓒ곽미소

 

어둠 속에 나 혼자만 갇혀있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 혼자뿐이었다.

마치 지금의 나의 현실 같아 보였다.

아니 어쩌면 아무도 없는 이 어둠 속이 나의 현실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 하였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떴고, 내 눈앞에는 캄캄한 어둠이 아닌 햇살이 들어오는 내 방안이 보였다.

 

‘아.. 꿈이었구나..’

 

몸을 일으켜 세우고 주방으로 향했다.

항상 그래왔듯이 식탁 위에는 2만 원과 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오늘 아빠 좀 늦을 것 같으니까 저녁 꼭 챙겨 먹어 사랑한다 우리 딸’

 

엄마가 돌아가신 뒤 나는 매일 아침 식탁 위의 돈과 쪽지를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해왔다.

처음에는 매일 아침, 돈과 함께 놓인 쪽지를 바라보며 울컥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빠는 매번 잦은 출장으로 얼굴 보기조차 힘이 들었고, 이제는 아빠의 사랑한다는 말조차 어색해져 갔다.

2만 원을 지갑에 넣은 뒤 학교 갈 준비를 하였다.

교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은 그저 평범한 여학생처럼 보였다.

 

‘아.. 학교 가기 싫다...’

 

매일 아침마다 드는 생각을 뒤로하고 집 밖으로 나가 학교로 향했다.

교실 문을 열자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내 자리로 향했다.

의자에 앉으려고 할 때, 한 아이가 내 의자를 뒤로 빼는 바람에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교실에 아이들은 나를 보며 웃었고, 나는 조용히 일어나 의자를 가져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왔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어쩌면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수업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조용히 일어나 수업을 들었고, 선생님이 나가시면 다시 조용히 엎드리고를 반복하였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되었고, 아이들은 시끌벅적하게 교실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을 제외하고 내가 고개를 드는 유일한 시간이다.

굳어버린 몸을 일으켜 세워 기지개를 펴며 교실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 평온함도 잠시 다시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재빠르게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

 

“아, 오늘 급식 진짜 별로다.. 이따가 매점이나 가자”

“그러자.. 진짜 반찬 별로여서 밥만 먹었다! 밥만!”

“야.. 너 다 먹는 거 봤거든...?”

“그냥 좀 넘어가자.. 야, 그건 그렇고 쟤는 맨날 잠만 자냐?”

“누구? 아~ 쟤?”

“너희 반 올 때마다 저러고 있던데...”

“너 쟤 모르냐? 전교에서 유명하잖아.”

“뭐로 유명한데?”

“왕. 따.로”

 

계속 부정해오던 현실을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들어버리고야 말았다.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는 것 같고 비참해지는 기분이다.

그 둘은 서로 웃어대며 교실을 다시 나갔고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수업이 끝나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서야 계속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고개를 들고 아무도 없는 집 안을 바라보자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나는 겨우 들었던 고개를 다시 숙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리고 말았다.

씩씩하게, 강하게 커 달라는 엄마의 말을 지키려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에 지쳐있었고, 아이들의 장난은 점점 심해져만 갔고, 텅 빈 집안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소리 내어 울다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내 방으로 향했다.

참아왔던 것들을 쏟아내서인지 그저 잠이 와서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학교에서 계속 엎드려 있었지만 한 번도 잠을 잔 적은 없었다.

하루 종일 경직된 몸으로 있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자 내 눈앞에는 온통 낙서투성이인 내 책상이 보였다.

나는 내 자리에 서있었고 아이들은 나를 향해 항상 그래왔듯 웃어대고 있었다.

 

‘왜.. 왜 꿈에서도 학교인 건데..’

 

평소 같았으면 그냥 자리에 앉아 엎드렸겠지만 꿈에서도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 상황에 화가 나서 주먹을 쥐었고,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한 아이의 말이 나를 짓밟았다.

 

“야, 쟤 몸 떠는 거 좀 봐.. 곧 자기 엄마 따라갈 기세인데?”

 

‘엄마’라는 단어를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하는 저 아이 앞에서, 그 말에 웃어대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평소처럼 엎드릴 수 없었다.

꿈에서 마저 비참해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아이는 내가 다가가자 움찔하였다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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