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로 알아보는 배양 효과 이론(Cultivation theory)

스시는 일본에 2,000년 전부터 있던 음식이었다. 스시의 기원을 따라가면 동남아 메콩 강 근처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정설로 여겨지긴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스시를 만든 건 일본이다.

 

▲ (출처 : 리그베다 위키)

 시대가 발달하면서 국가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일본의 식문화가 서구권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식문화였다. 날로 먹는 생식 문화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던 서구권에 날생선을 밥 위에 얹어 먹는 스시는 말 그대로 미개한 음식 취급을 받았다.

 

 실제로 1964년 도쿄 올림픽 당시, 미국은 ‘날생선을 먹는 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할 수는 없다’라며 보이콧을 시도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1941(1980년 作)’에선 미국 병사를 말리는 장교가 ‘크리스마스에 날생선을 먹고 싶냐?’라며 호통치는 장면이 나온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 스트리트(1987년 作)’에서 역시 마틴 쉰이 스시를 들고 냄새를 킁킁 맡으며 인상을 찌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LA타임스는 스시를 두고 ‘나 같으면 스시 대신 핫도그를 먹겠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 모든 사례가 몇십 년 채 되지도 않은 이야기다. 확실히 서구권에서 스시는 기피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스시는 상황이 다르다. 지금 미국에선 ‘스시를 먹지 못하면 상류층이 아니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이고, 애플사의 CEO였던 故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애플사에 고용했던 사람은 IT업계 종사자가 아닌 스시 요리사였다. 현재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스시바를 창업하려고 미국으로 날아가는 동양인들도 많이 있다. 이제 스시는 서구권 문화에서도 고급 음식으로 취급받고 있다. 물론 스시 자체의 질이 올라갔고,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현지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스시는 ‘날생선을 밥 위에 얹어 먹는 음식’이다. 날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바뀌었기 때문에 스시를 고급 음식 취급해준다는 건 스시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을 전부 설명해 줄 순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구권에서 스시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었을까?

 

▲ 로버트 드 니로와 동업자 마쓰히사 노부유키 (출처 : 워싱턴 중앙일보)

 그건 바로 택시드라이버, 대부 등으로 유명한 할리우드의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 덕분이다. 아직 서구권에서 스시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았을 때, 로버트 드 니로는 스시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그는 미국에 있던 작은 스시집의 단골손님이었고 스시에 푹 빠진 로버트 드 니로는 스시집의 요리사에게 동업 제안을 한다. 그리고 1994년, 둘은 힘을 합쳐 뉴욕 맨해튼점을 개점한다.

 

 그리고 이는 스시의 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로버트 드 니로를 중심으로 할리우드 전역에 스시 문화가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 (출처 : 영화 '킬 빌' 中)

 이후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등장한 스시는 이전의 역할과 확연히 다르게 등장한다. 로버트 드 니로가 출연했던 ‘애널라이즈 댓(2002년 作)’에선 드 니로가 마피아의 두목으로 등장해 스시를 능숙하게 먹는다. 이를 본 부하들은 처음엔 꺼려하지만 보스를 따라 스시를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 프라임 러브(2005년 作)에서도 여 주인공이 애인과 데이트를 즐겨 하는 장소도 맨하튼의 일식당 ‘스시맘보’였다. 레옹으로 유명한 장 르노가 출연했던 ‘와사비 : 레옹파트2(2001년 作)에서도 장 르노가 일식당에서 와사비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킬 빌(2003년 作)에서도 역시 우마 서먼이 젓가락질을 하며 스시를 먹는다, 영화뿐만 아니라 섹스앤더시티라는 미국 드라마에서도 주인공 사만다가 스시를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틸다 스윈튼 같은 유명한 배우들이 말끔한 복장을 하고 능숙하게 젓가락질을 하며 스시를 먹는 장면들이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 속에서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엔 설국열차(2013년 作)에서 나오듯 1년에 단 한번 먹을 수 있는 생선을 스시로 만들어 먹을 정도로 귀하고 그만큼 값진 음식으로 미디어를 통해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 속 스시의 묘사 때문에 서구권 시민들이 가지고 있던 스시의 편견이 깨지기 시작했다.

 

▲ 정장을 입고 초밥을 먹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출처 :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中)

 몇십 년 전만해도 미개한 음식 취급을 받으며, 미디어에서조차 조롱거리처럼 나왔던 스시지만, 할리우드 영화를 중심으로 마피아 보스, 정치가, 권력가, 스마트한 직장인 등의 캐릭터들이 스시를 먹는 모습이 널리 퍼져나갔고, 이 모습이 서구권 사람들에게 스시를 고급스럽고 상류층이 먹는 음식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출처 : Hawkins and Pingree(1983))

 조지 거브너가 주창한 이론 ‘배양 효과 이론(Cultivation theory)’은 매스미디어에 많이 노출, 묘사될수록 소비자(시청자)는 매스미디어가 묘사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이론이다. 문화와 매스미디어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매스미디어가 우리의 문화를 움직일 수도 있다는 이론이다.

 

 간단한 예로, TV에서 폭력적인 영상이나 뉴스가 많이 나올수록 사람들은 실제론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이 폭력적이고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TV에서 불륜을 다룬 막장드라마가 많이 나온다면 현실에서도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고, 불륜을 저지르면 TV에서 묘사된 것처럼 행동을 하겠구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결혼을 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결혼은 위험해’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 같은 경우도 우리의 생각엔 매우 심각한 인류 최대의 위기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이다. NASA의 수석 기후학자인 제임스 핸슨 박사는 지구온난화에 대해 ‘우리는 전환점을 넘어섰지만 돌아오지 못할 지점을 넘어서진 않았다’라고 발표했고, 몇몇 기후학자들은 ‘온난화란 반복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주장하며 과거에도 지금보다 온도가 더 높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역사적 근거를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보았던 지구온난화, 오존층파괴, 프레온가스 등에 대한 뉴스. 그리고 워터월드(1995년 作), 투모로우(2004년 作), 설국열차(2013년 作) 등의 영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한 묘사를 본 덕분에 실제 학자들이 전망하는 지구온난화보다 더욱 위험하게 지구온난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스시의 세계화 역시 조지 거브너의 배양 효과 이론에 따라 설명할 수 있다. 맨 처음 제시했던 올림픽과 당시 영화 사례만 보더라도 서구권 문화에서 스시는 미개한 음식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를 중심으로 많은 할리우드 감독과 배우들이 자신의 영화에 스시를 소품으로 넣기 시작했고, 이전의 서구권이 가지고 있던 미개한 음식이라는 인식과 다르게 똑똑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으며 외모가 말끔한 상류층들이 스시를 먹는 장면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본 대중들은 ‘스시는 저런 상류층들이 먹는 음식이구나’, ‘스시는 굉장히 고급스러운 음식이구나’라고 매스미디어 속의 묘사를 현실로 받아들여 스시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 (출처 : 리그베다 위키)

 그러므로 스시를 만든 것은 일본이지만, 스시의 세계화를 이뤄낸 것은 할리우드라는 것이다. 스시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하더라도 하층민, 거지들이 먹는 음식으로 묘사 됐었다면 스시는 아직도 미개한 음식 취급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확실한건 스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날 생선을 밥 위에 얹어먹는 음식이란 것이다. 바뀐 것은 스시가 아닌 사람들의 인식이다. 이렇듯 매스미디어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현실까지도 조종할 수 있다. 매스미디어에게 조종당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알고 있던 것들이 실제일지 아닐지 판단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할 것이다.

 

 

참고 내용 :

 XTM 가제트 220화 「한 점의 품격, 스시」

 XTM 잡식남 1화 「세기의 음모론」

 EBS 세계견문록 아틀라스 「요리의 탄생, 일본 스시」

 덮밥 2.0 블로그 - 스시, 헐리웃을 정복하다(http://dupbap.tistory.com/48)

 한국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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