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Polygon
사진출처 = Polygon

혼잡하고 난해하기 그지없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예술영화는 대게 이런 정도의 느낌들을 지니고 있다. 이 영화는 과장되고 매우 이질적이며 혼란스럽다. 뭔가가 장황하게 낭독되고 있는 것 같지만, 제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내용은 간결하지만, 표현 방식 자체가 투박하고 과격하다. 높은 선정성으로 인한 충격은 이 영화를 몰입하는 데에 있어 큰 역할을 한다. 완급조절이 상당히 잘되어 있어, 순간적 몰입도를 높여 영화를 보면서 매 순간 관객에 흥미를 자극한다. 주인공인 벨라가 매음굴에 들어 가면서부터 그 특유의 연출이 심화되기 시작한다. 벨라가 뜨거움 뜀박질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그녀에게 그런 행위들은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며 모험의 일부로 치부된다. 그저 몸은 생산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지 더러운 것이 아니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들이 그토록 말하는 상류사회에서 통용되는 행위에 정확히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그녀의 신념은 후반부로 갈수록 확고해진다. 어눌했던 말투는 점점 논리적으로 바뀌고, 책을 읽으며 교양을 쌓는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와 그녀가 마주한 것은 단 음식들과 폭력뿐이었다. 영화의 외적인 부분들을 말하기는 싫지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에 대해서는 언급해야 할 것 같다. 그의 작품 세계는 매우 어둡고, 현실적이다.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흥미로운 설정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사람이 동물이 된다거나, 저주를 거는 것처럼 다소 뜬금없으나, 이런 설정들은 이야기에 기초적인 틀을 제공할 뿐 그 위에서 여러 인물들이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는 이기주의와 염세주의로 점철되어 매우 암울하지만 현실적이며, 인간 본성의 추악함을 한 올 한 올 벗기며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킬링 디어”이다. 이 작품을 짧게나마 언급하자면 상류층 가정에 자녀들에게 의문의 병이 도지면서 이것이 일반적인 질병이 아니라 예전 의료 사고로 인해 가족을 잃은 한 소년에게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이야기는 미궁으로 빠진다. 이 영화는 결국 진실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곳에서 인간 군상에 추악함을 여실히 드러내는데, 의료 사고를 반성하지 않는 주인공과 저주는 건 마틴이라는 인물의 대립이 이어지며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걷잡을 수 없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는 정적이면서도 충격적 전개의 연속이다. 그 과정에서 살려고 발버둥 치는 인물들을 비추며 영화의 도입부와의 괴리감을 보여준다. 허구의 이야기이고, 영화적 상상력이지만, 그 안에서 치고받는 인물들의 심리는 가히 압도적으로 현실적이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를 조금 더 보고 싶다면 “킬링 디어”를 보기 바란다. “가여운 것들”에 비해서 조금 더 묵직하고 정적인 영화라고 설명하고 싶다.

 

사진출처 = CN Traveller

주인공인 벨라는 신생아인 것처럼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인간이었다. 덩치에 비해 한없이 떨어지는 인간이다. 여기서 란티모스 감독 특유의 영화적 상상력이 들어간다. 죽은 산모의 배에서 아이를 꺼내 아이의 뇌를 산모의 머리에 이식하는 것이다. 참으로 기괴한 설정 일수 없다. 그녀를 살린 것은 벡스터 박사이다. 그의 아버지도 과학자였는데, 아들의 신체로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고 한다. 산분 비선과 유무선을 제거해서 위액을 직접 만들어 내지 못해서 밥을 먹을 때는 이상한 기계를 달고 기괴하게 입에서 비눗방울 같은 것을 뱉어낸다. 백스터 박사에 집은 그야말로 다른 세계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머리는 오리지만 몸통은 강아지이고, 머리는 돼지지만 몸통은 오리인 기괴한 생명체들이 다니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벨라는 바깥으로부터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벡스터 박사는 자신의 조수에게 그녀는 단지 실험체라고 말한다. 실험 조건을 통제하지 않으면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는 진심이 아니었다. 벡스터 박사는 그녀는 진심으로 아끼는 인물로 묘사된다. 아버지에 실험 탓인지 흉측해진 얼굴을 달고 살아도 벨라는 벡스터 박사를 하느님이라고 부르며 곁에 있어주는 존재였다. 조수와 벨라를 약혼시키기 위해 계약서를 작성하라고 고용한 변호사 던컨이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다. 외부의 인물이자 벡스터 박사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인물이다. 그렇게 던컨은 벨라를 유혹하고 벨라는 새로운 세계를 모험하기 위해 그를 따라나선다. 그들이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풍경은 아름답지만 매우 이질적이다. 막무가내로 섞어놓은 비현실적인 색감에 하늘은 그녀의 모험이 동화 속 이야기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이것이 현실에 이야기가 아니며 어쩌면 벨라의 머릿속으로 그려낸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배경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현실적인 톤으로 돌아오지만, 그런 이질적인 배경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아름다움 덕에 시각적 즐거움은 매우 뛰어난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처음으로 감탄한 것이 리스본의 풍경과 파리에서의 정갈함이었다. 리스본은 겉으로는 매우 화려하지만, 그만큼 오지는 더더욱 어두운 곳이다. 그렇게 그들은 아테네로 향하기 위해 배에 몸을 싣는다. 그곳에서 마사 여사와 해리를 만난다. 마사 여사는 벨라가 만난 제대로 된 연장자이다. 세월을 겪으며 무뎌지고 노쇠하며 쾌락에 집중하기에는 너무나 늙어버린 자신을 이야기하며 벨라의 사고에 또 한 부분을 넓혀준다. 그녀에 옆에 있던 아서는 자신을 냉소 주의자라고 소개한다. 그는 그녀에게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여주며 이상주의는 무너지기 쉽지만 현실주의는 무너지지 않는 다라며 말해준다. 그에 충격받은 벨라는 던컨에 돈을 모조리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돈이 없던 그들은 파리 거리에 나앉게 된다. 그렇게 벨라가 매음굴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 영화는 가속화된다.

 

사진출처 = FLM
사진출처 = FLM

이 영화는 여러 챕터로 나누어진다. 1장은 런던 그리고 2장은 리스본 3장은 빅토리아 블레싱 턴 4장은 배 5장은 알렉산드리아 6장은 파리 그리고 7장은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처음 런던 부분과 파리 부분일 것이다. 파리에서의 다소 과격한 전개 방식은 여성의 자유에 대한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파리 에서부터는 던컨과 헤어지면서 진정으로 벨라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곳에서 매음굴에 사장으로 보이는 인물과 조우하며 그녀는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마사 여사와 같이 늙어버린 그녀는 벨라에게 여성의 현재 지위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인간으로서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밑 부분까지 왔지만, 벨라에게는 또 다른 모험이자 경험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독자적인 규칙을 만들며 남자들과 몸을 섞는다. 하지만 이내 공허함이 찾아오고 사춘기가 온 것처럼 세상을 비관하게 된다. 그저 칭찬과 단 음식으로 길러진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말이다. 분명 자유를 찾아 떠나왔지만, 또다시 갇힌 것 같은 느낌이 그녀를 덮치며, 고뇌하게 된다. 그때 사장이 들어와 그녀에게 위로해 준다. 이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연민이다. 정말로 가여운 것을 무엇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연민은 서서히 경멸과 분노로 변질되어 간다. 기준이 정말 애매해진다. 백스터 박사와 던컨이 언급한 상류사회와 이상 주의에 관점에서는 벨라는 연민의 대상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자유로워진 것은 벨라이다. 이상을 추구하던 인물들은 모두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한다. 제목을 생각해 본다면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누군가가 본다면 연민을 느끼게 될 정도로 하나 정도는 빠져버린 삶에 빠져 있다. 벡스터 박사는 흉측해진 외형과 성관계조차 생물학적으로 하지 못하며, 그의 조수는 벨라와 약혼까지 했지만, 벨라가 떠나버렸다. 그리고 던컨은 벨라로 인해 모든 돈을 잃었으며, 벨라의 원래 남편 또한 자신의 하인들에게 언제 보복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항상 총을 들고 다니는 인물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을 내려다보며 가여운 것들이라는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벨라가 되었다.

 

사진출처 = IMDb
사진출처 = IMDb

사장은 벨라에게 말한다. “암흑기를 지나고 있고. 광명과 지혜가 찾아오기 직전이니 조금만 더 참아라.” 그렇게 벨라는 파리에서 이곳저곳을 둘러 다니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아다니게 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중 벡스터 박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온다. 런던에서의 이야기는 결말로 직결되어 있다. 이곳이 종착지이며, 벨라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깨닫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그런 답답한 관계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벨라는 런던에 돌아와 어느 정도 성장한 이상 그런 관계는 원치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예전처럼 말을 많이 하진 않지만 솔직한 이야기들은 벡스터 박사에게 털어놓는다. 말이 많아지면 말의 무게가 줄어든다. 벨라가 내적 성장을 하며 그녀의 말투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그녀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영화의 최 후반부는 매우 현실적인 톤으로 그들을 비춘다. 물감을 드리 부운 듯한 하늘은 온데간데없이 창백하고 차가워 보이는 하늘만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이전 삶도 현재의 삶과는 크게 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지겨운 상류층 생활에 못 이겨 자살을 했고, 자신의 자식을 악마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것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듯했다. 벨라는 결국 자신이 원래 살던 런던에서 자유를 찾았다. 그녀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본인의 자유의지 대로 살아갈 듯하다. 정말로 눈이 즐거운 영화이다. 단순히 짙은 선정성만이 가미된 영화가 아닌 성장에 대한 조금은 과격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벨라라는 캐릭터를 설계했다. 매우 몰입도가 높았으며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시계를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름다운 동화적 색채와 성장과 자유에 대한 서사를 보다 새롭게 경험해 볼 수 있는 영화 “가여운 것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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