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의 유래와 그날의 역사

 3.1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요한 날이다. 바로 '삼일절'이라는 국경일이기 때문이다. 삼일절은 한민족이 일제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고,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미주 등의 해외 동포들도 다양한 행사를 통해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부터 삼일절의 유래와 그날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출처: namuwiki
출처: namuwiki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시대 아래 일제의 엄청난 탄압과 가혹한 통치를 받아 왔다. 심지어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역사와 말을 배우지 못하게 총과 칼로 지배하기까지 했다. 독립에 대한 불씨는 도쿄에서 조선인 유학생 600명이 2.8 독립 선언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1919년 1월에는 고종 황제가 갑자기 사망하는데 그것이 일제의 독살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이로써 일제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커지고, 독립에 대한 의지는 더 강해졌다. 천도교인들은 동학 농민 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독립운동을 준비했다. 최린의 주장으로 마침내 독립 선언서가 작성되고, 3월 1일 2시에 탑골 공원에 모여서 만세 시위운동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민족 대표 33인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탑골 공원을 가지 않았고, 종로 태화관으로 향했다. 민족 대표들이 오지 않자 학생 대표 정재용은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였고, 사람들은 태극기를 꺼내며 대한독립만세라고 외쳤다. 이것은 만주, 연해주 등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3.1이 끝난 후에도 시민 단체가 결성되고, 여성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 독립군이 생겨나며 독립운동은 계속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이 시기에 일어난 시위 횟수는 총 1692건, 참가자는 약 100만 명, 사망은 약 1000명이라고 한다. 따라서 3.1 운동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자유의 기초가 되었다.

 그럼 삼일절은 언제부터 국경일로 지정되었을까? 광복 이후 1946년 3월 1일, 제27회 기념식을 기점으로 이날 처음으로 국가 경축일로 지정되었고, 대한민국 제1공화국 수립 이후 1949년 10월 1일 국경일로 재지정되었다. 그리고 2005년 12월 29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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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운동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인물로는 유관순 열사가 있다. 당시 만 17세 고등학생이었던 유관순 열사는 아우내 장터에서 친구들과 밤새 만든 태극기를 사람들에게 나눠주었고, 3.1 운동을 하다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된다. 그리고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는다. 그녀는 재판장에서 일제는 나를 재판할 권리가 없다고 외쳤다고 한다. 1920년 2월에는 옥중 만세 운동을 계획한다. 수감자들에게는 쪽지로 전달하였고, 3월 1일에 3천 명의 수감자들과 함께 옥중 만세 운동을 한다. 그 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형무소 주위로 몰려들어 대한독립만세라고 외쳤고, 이 운동은 성공적으로 끝이 난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녀는 모진 고문을 받았고, 1920년 9월 28일, 결국 옥사한다.

 삼일절을 맞이해서 이렇게 역사를 공부해 보니 내가 몰랐던 사실과 독립운동가들을 포함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었다. 유관순 열사는 '고문을 받는 고통보다 나라를 잃어버린 고통을 더 견딜 수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가 지금 다시 되찾은 나라에서 이렇게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도 다 그들 덕분이 아닐까 싶다. 3.1은 단순한 공휴일이 아니다. 우리는 꼭 삼일절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아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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