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모두에게 도착의 천국일까, 출발의 지옥일까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① (제공=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① (제공=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선전 구호를 즐겨 쓰여 왔던, 주거 양식의 대가인 아파트와, 주거 생존권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하는 영화다.  자연재해 중의 대지진으로 인한, 모든 기반 시설 파괴와, 하루 만에 집을 잃은 체 떠돌아다니게 된 재난 난민과, 홀로 우뚝 선 아파트의 주민 간의 다툼에서 인간의 생존 심리에 대해 다루고,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든, 나와 다른 타인이 있다면, 협력과, 보호의 목적으로 집단을 형성하며, 내부 갈등과 외부 갈등에서 다툼을 벌여야 하는 중에 도덕심과, 원칙의 상대성의 문제로 비극을 맞게 되고, 때로는 명분이 주어지고, 갈등 상황을 봉합하는 도구적 역할도 하는 점을 극 중에서 많이 비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라는 속담도 떠올리며 시청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아파트로 새로운 계급의 판단을 하는 작용을 하는 상징물로 작용하고 있는데, 집을 잃어버리면 생존 불안이 극한으로 치닫고, 가지면 가치가 더 오르기를 바라고, 건너 아파트가 어떤 지위에 놓여있는지 따라, 너와 나는 다르다는 편가르기도 대사를 통해 알리는데, 아파트에 이름을 개명하는데 주민끼리 실랑이를 벌이거나, 자연 재난 앞에서는 이 위계의 힘이 와르르 무너지는 현상도 알려준다. 즉, 손쓸 수 없는 재난 앞에 공적인 증명 체계가 무력화된다면, 모든 질서는 다 무너지고, 새로 재건됨을 알린다. 

아파트는 도시 발전의 상징이자, 현대 주거의 보편적 양식이며, 새로운 가구 형성의 도구이자, 인구 대비 효율성이 높은 주거 형태다. 현재 청년층에서 느끼는 아파트의 이미지와, 중장년층이 느끼는 아파트의 이미지는 확연히 다르다. 또한 가족에서의 역할에 따라, 느끼는 아파트의 삶도 분명히 다르다. 누군가는 싫을 것이고, 누군가는 좋아하는 삶의 공간이다. 삶의 한 부분에서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통계 지표로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서 발표된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중에 아파트 거주율은 51.9%이며, 주거용 아파트 면적 평균은 22.3평이다. 평균 가구원이 2.29명으로, 주거권을 따져보면, 1인당 주거공간의 크기는 턱없이 작다. 또한 전국 주택 개수는 1,881만 1,627호인데, 이 중 아파트는 1,194만 8,544호로 전체 주택 중 63.5%를 차지한다. 과반 이상이 거주하는 공동 주택이자, 국토 과반의 주택이 아파트다.  우리나라가 본격 과반의 주거 형태로 아파트가 인식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다. 이는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요즘 미디어를 보면, 공간이 대부분 아파트(공동주택)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거는 단독주택 위주의 공간을 보여줬다. 인식이 그대로 시대에 따라 반영되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②(제공=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틸컷 ②(제공=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가부장적 역할 메커니즘을 이 영화에서도 여실히 보여주는데, 남자는 음식이나, 생필품을 구하거나, 치안 관리에 투입되며, 여자는 생활 전반의 통제, 물품 배분, 음식 조리, 의료 간호 등의 역할을 한다.  일부러 극명하게 나눈 이유도 알 수 있는데, 이 역할 활동이 본성인가, 아니면 제도 활동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데,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적재적소에 맞는 효율적 역할인지, 아니면 관습적 역할로,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의무감에 대한 인간 본연의 심리 갈등도 보여줌으로써 생존이 1순위인 상황에서 지위에 위계가 사실 있는지, 명예를 강하게 부여받는 게 과연 합리적인지에 대해서도 묻는다.

주거로서의 그치는 아파트라면 다행일지 모르지만, 투기 또는 투자로써 다뤄지는 움직이지 않는 부동자산, 아파트. 공급은 충분히 많은데, 입주의 기회는 평등하지 않은 이상한 구조, 역사에서는 아파트는 경제적으로 하층에서 공급되던, 주거 형태였는데, 어쩌다, 중·상층의 세습 사다리의 도구가 되었을까. 아파트는 영원한 존재가 아니다. 늙는다. 항상 문제가 되는 건 오래 축적되는 부작용에서 촉발된다. 한국만큼 아파트를 경제지에서 늘 다루는 국가는 없다. 그리고 건설업에 과잉으로 이목을 끄는 국가도 없다.  왜? 우리 모두는 의식주 중 주거권에 이렇게 매달리는 생존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가. 이 구조를 누가 만들었는가. 그리고 누가 따르는가. 이 영화는 묻는다.

춥고 배고픔의 생존에 있어 주인은 없다. 지키려는 자와 잃어버린 자의 끈질긴 공성전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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