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속에  얽히고 얽혀 풀리지 않는 무언가에 갇혀있었다. 지금도 아마 갇혀있을지 모른다.

모과는 울퉁 불퉁 못생겨서 '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 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모과는 생긴 것과는 달리 뛰어난 향과 효과를 지닌 과실이다.  사람들은 모과를 이용해 식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향이 좋은 특징이 강해 관상용으로 두는 경우가 대다수다.  여기서 나오는 모과의 모습이 우리를 비유하는듯하다. 오직 관상용을 위해 우리가 제조되었다는 사실. 멋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지 못하는. 훈육을 위해 잘못 뻗는 가지들에게 가지들을 자르고 철사로 감는 것이 생존력이 높아진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실일까. 나무들의 입장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의 입장도 그들이 알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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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유가 우리가 생각한 자유가 아니었다. 결국 우린 우리 안에 갇혀서 우리 땅에서 남의 국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법을 위반하는 것을 판단하고 적용할 사람은 우리가 아닌 점령군 그들이었다. 그들은 1946529일에 발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등기제를 시행했고 이에 따라 신문기사를 내는 것 또한 허가 없이 발행을 하며 불법으로 규정을 했다. 그리고 현행 배포하고 있는 신문들도 규정에 따라 허가증을 게시하라고 명령받았다. 이런 자유의 압박을 토대로 자유의 억압은 더욱 심해져 중앙 기관지에 이어 좌익계열로 분류된 것들도 있다라 폐간이 되었다. 이러한 것들보다 더 많은 자유의 제한을 받았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신문에 이어 문화계에서도 미국화의 영향을 점점 받기 시작했다. 우리는 당연하듯 유럽사 중심의 세계사를 미국에 두는 인식의 테두리로 설정했다. 서양철학사부터 시작해서 자유론 등 문학 분야로도 확산된다. 영화 또한 엄격한 검열을 했다. 배제 검열의 기준은 우리 중심적이 아닌 다른 나라에 부정적인 요소들이 들어가 있으면 안 된다. 사회비판적인 수위가 높은 작품을 중심으로 미국이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가 보이는 영화 또한 모두 배제했다. 심지어 수입영화가 1950년대부터 더 많이 생산되어왔고 국산 영화들은 공산당 이야기 자유 수호 사랑 민간인 같은 이야기들로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틀 안에 박혀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국의 영화는 모두 좋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미국이 항상 이긴다든지, 영웅이 된다든지, 구세주가 된다든지. 이런 엄격한 검열 덕인지 내 머릿속 한쪽에 미국은 항상 좋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줄 수 있다는 틀에 박혀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어렸을 때는 그랬다. 잡지 또한 우리의 자유는 얽매여졌고 더 이상 자유를 표할 수 있는 곳이 없어졌다. 이것이 바로 문화를 통한 전쟁. 문화 냉전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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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비해 문화에 대한 압박이 느슨해졌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모르는 냉전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완전히 없어졌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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