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이 있다. 누군가에겐 악이어도 누군가에겐 선일수 있다.
글을 배울 때쯤부터 심청전이라는 책을 읽었고 학교 수업 시간에도 배우며 자랐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흔한 전래동화다. 심청전에서 심봉사의 재산을 탐내는 악역으로 등장하는 <뺑덕>의 주인공인 뺑덕 어미도 그녀만의 사정이 있다. 뺑덕어미는 어려서부터 세상의 외면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도 자기 스스로 팔자를 한 번 바꿔보려고 매우 노력했다. 뺑덕어미는 그 과정에서 번번이 실패한 여자다. 스스로 실패한 여자라고 생각하는 그의 아들인 뺑덕의 아픔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뺑덕어미는 어린 나이에 본처가 있는 집의 첩으로 시집을 가 병덕을 낳았다. 시집살이는 고됐지만 뺑덕이(병덕의 별명)를 생각하면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본처는 쓸모가 없어진 뺑덕어미를 내쫓자고 하였고 고분고분한 남편은 그 말을 수용했다. 팔자 한 번 바꿔보자고 시집간 집에서 쫓겨났다. 아들까지 빼앗겼다. 그 후 뺑덕어미는 동네에 계시는 친어머니의 친구의 주막에서 일을 하며 지냈다.
뺑덕은 새 어미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집에서 쫓겨났고 고된 뱃일, 친모에 대한 원망을 하며 살아갔다. 답답한 마음에 정체를 숨기고 친모를 찾아갔다. 생모의 첫 행실을 보고 경악하며 돌아섰지만 ‘아들’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물불 안 가리는 모습이 기억나 다시 재회하며 아들이 먼저 손을 내미는 스토리다.
뺑덕이가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성장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던 것이었다면 괜찮은 스토리다. 하지만 아들이 엄마를 찾아가 관계 회복을 하는 부분은 좀 불편하다. 열네 살 정도의 아이가 일찍이 부모의 결핍을 느꼈다. 뺑덕의 생모는 자신을 괴롭게 하는 존재인데 찾아가는 뺑덕이 불쌍했다. 부모가 어떤 사연이 있어도 아들, 딸이 되는 사람들에게 “너네가 먼저 손을 내밀어라“ 말하는 것 같았다. 작가의 말에도 분명히 적혀있다. 의도한 것이다. 책의 내용대로 이렇게 성숙한 아이가 있을까? 스토리는 감동적이지만 어린아이인 뺑덕에겐 너무 가혹하다.
작가의 말을 읽은 후에는 조금 찝찝했던 감정이 더 커졌다. 심봉사의 딸 청이에게서도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으나, 청이는 잘못한 것이 없다. 그런데 자신이 마치 죄인인 것처럼 지내며 결국 물에 빠져 죽는다. 그 후 연꽃이 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연꽃에 의미를 부여하는 페이지만 해도 몇 장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연꽃이 폈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에서는 청이의 죽음을 그럴듯하게 꾸며 놓았지만 작가의 말이 날 또 불편하게 한다. 외면받던 사람들의 이야기인 뺑덕과 뺑덕어미의 이야기를 조명한 것은 좋았다. 하지만 자녀들에게 상처가 많은 부모에게 먼저 다가가라는 말은 함부로 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