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희망은 없을까?
해맑은 20대를 바라는 김성해의 '유학 이야기'

 한국이라는 비좁은 사회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생존 경쟁. 지쳐버린 청춘들은 전쟁터에서의 탈출이 간절하다. 그러나 현실은 제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한다. 우리가 선택한 길이 정말 탈출구가 맞을까? 새로운 길에서 삶의 희망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청춘들. 자칭 해리, 해맑은 20대를 희망하는 김성해 교수는 이들에게 되묻는다. "왜 못 떠나는가?"

바람에 살랑거리며 흔들리는 갈대밭과 해맑게 웃고 있는 김성해 교수 (사진 본인 제공)
바람에 살랑거리며 흔들리는 갈대밭과 해맑게 웃고 있는 김성해 교수 (사진 본인 제공)

 연세대학교 졸업 후, 동부증권에서 투자 업무를 담당했던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외환위기를 만나 1998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조지아 대학교에서 언론학 및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Q1.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유학'을 택했다. 그 계기가 있다면?

"절박한 자의 마지막 선택이었죠. 당시 저는 이미 더 이상 한국에서 버틸 힘이 없었어요. 그 이유가 뭘까 되돌아봤어요. 한국 사회의 '계급'이라는 구조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고 있던 저를 발견하게 된 거죠. 지금도 충격적인 사건이 있어요. 서울에 있는 연대(연세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시골에서 자란 저와 완전히 다른 취미를 갖고 있었어요. 처음엔 그저 나와 친구들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취향이라는 게 전혀 다른 세계였던 거죠. 여기서 '계급'을 뼈저리게 느꼈고 펀드 매니저로 일하며 또 '계급'이라는 게 보이더라요. '계급'이라는 것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보며 한국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2. 미국에 직접 가보니 한국과 상황이 달랐나?

"한국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났더니 누구도 제 '계급'을 묻지 않았어요. 저도 미국 사람들의 '계급'을 잘 모르니까 나 스스로 자기 검열하는 일도 없어졌고요. '계급' 때문에 저에게 한계를 쥐여 주는 사람이 없어지니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었고요. 유학에서 가장 좋았던 점이 오히려 '아 이제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구나.'였어요. 공부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면 되고, 남들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비로소 한국 사회가 제가 원치 않음에도 주었던 무수한 굴레로부터 탈출했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어요."

Q3.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통해 '자신'이 달라진 점은?

"생계유지를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 덕분에 제 인생이 많이 달라졌어요. 7년 동안 피자 배달을 하면서 신호를 한 번에 4~5개씩 봤어요. 이때 제일 기분 나쁜 상황은 초록 불이 켜져 있을 때요. 왜? 신호 가까이에 도달하면 100퍼센트 빨간 불로 바뀌니까요. 반대로 기분 좋을 땐 빨간 불일 때예요. 제가 가는 동안 분명히 저한테 기회가 올 거니까. 그런 경험을 많이 했어요. '눈앞의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느껴질 때, 오히려 위태롭다.'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사람들이 지금의 상황이 힘들더라도 자신이 준비된 상태가 되면 좋아질 것이란 희망을 품으면 좋겠어요."

Q4. '절박한 자의 마지막 선택'으로 떠난 유학길이지만 많은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유학이라는 도피처를 택한 또 다른 해라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만 하는지. 지금의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유학은 물리적으로 내가 살아가는 공간으로부터 격리되는 순간입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보고 다른 기회를 만나는 것이고 다른 느낌을 만들어 보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도피 유학이든 뭐든 상관없이 무조건 유학을 찬성합니다. 그런데 왜 못 떠나는가. 무서움, 두려움? 저처럼 절벽에서 떨어져 보세요. 고민하지 말고 그냥 가는 겁니다. 가면 다 해결되니까요. 근데 많은 사람은 가기 전에 이것저것 걱정을 다 하죠. 근데 우리는 혼자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기에 낯선 곳에서도 살 수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이거예요. '들에 있는 풀과 나무를 봐라. 돌봐주는 이 하나 없어도 잘만 자라지 않느냐. 근데 내가 널 지켜주는데 뭘 그리 겁을 내느냐.'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에 유학을 다녀오면 변화된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혼자 경산에서 10년 사는 것과 저 멀리 서울에서 한 달 사는 것. 어떤 선택이 나의 삶에 경쟁력을 높여줄까요?"

사진 : Unsplash의 Elijah Hiett
사진 : Unsplash의 Elijah Hiett

 "절벽에서 떨어져 보아라." 새로운 시작을 앞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닐까? 과감하게 도전하고 또 실패해 보고. 낯선 곳에서 인생을 배우면서 우리는 성장할 것이다. 준비된 자에게 원하는 결과가 뒤따를 것이니 두려움을 버리고 한 걸음 나아가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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